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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영성] 병자성사, 병고를 통해 참여하는 파스카 신비

Berardus 2019. 6. 29. 12:31

[전례 영성]
병자성사, 병고를 통해 참여하는 파스카 신비
    병자성사 (병자의 도유) 이 성사는 전례서에 규정된 기도문을 봉송하면서 성유(聖油)를 병자의 각 신체기관(눈·귀·콧구멍·입술·손, 전에는 발과 허리까지였음)에 도유(塗油)하는 것이다. 이 성사는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집행할 수 있다. 동일한 병으로 앓고 있는 동안에는 단지 1번만 이 성사를 받을 수 있으나, 회복 후 다시 앓게 될 경우에는 또 1번 이 성사를 받을 수 있다. 신앙적으로 보면 병자의 도유는 고백성사를 보완하고, 수령자가 무의식 상태일 경우 고백성사를 대체하는 매우 유익한 성사이다. 병자의 특별한 임무
    ‘죽을 고생’이라는 말도 있지만 아파서 죽을 지경이면 인간은 정말 괴롭다. 하지만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는 병자라면 똑같은 어려움을 겪어도 “신앙의 빛으로 도움을 받아 고통의 신비를 깨닫고 그 고통을 더 굳건히 견뎌 낼 수 있다”(「병자성사 예식 지침」, 1항). 사실 그에게는 병마와 싸움으로써 교회 안에서 수행할 특별한 임무가 주어져 있다. “곧 다른 사람들이 본질적이고 천상적인 것을 잊지 않게 하며, 우리의 죽을 인생은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통하여 구원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임무이다” (「병자성사 예식 지침」, 3항). 육신과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
    죽을 인생이라고 육체를 돌보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오히려 “힘을 다하여 온갖 질병에 맞서 싸우고 건강이라는 선을 열심히 추구하는 것” (「병자성사 예식 지침」, 3항)이 하느님의 섭리 계획이다. “육신과 영혼의 의사” (전례 헌장, 5항)이신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쳐 주셨다. 특히 병자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쏟으셨으며, 고통을 겪는 모든 이를 자신과 동일시하셨다. “너희는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다”(마태 25,36). 이렇게 “주님께서는 병자들의 영혼과 육신을 다 돌보시며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병자성사 예식 지침」, 5항).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명령을 따른 제자들은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3). 기름은 성경에서 축복과 하느님 사랑의 상징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약으로도 널리 쓰였다. 여기서 기름이 성령의 치유와 정화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병자의 육신과 영혼을 치유하고자 기름을 바르는 행위가 바로 칠성사가운데 하나인 ‘병자성사’이다. 이 성사는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의 서간에 잘 드러나 있다.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야고 5,14-15). 마지막 도유, 종부 성사 병자의 거룩한 도유(Sacramentum Unctionem Infirmorum)는 신약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동서방을 막론하고 교회의 거룩한 전례 전통으로 보존되어 왔다. 이 성사의 효과가 중세기에 오면서 신자들은 점차 질병의 치유보다는 영혼의 치유, 곧 죄의 용서에 있다고 보기 시작했다. 나아가 병자성사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받는 고해성사로 여겼다. 병자성사를 지난날에 ‘마지막 도유’(Extrema Unctio)라는 뜻으로 ‘종부성사’(終傅聖事)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세례, 견진 때 도유를 처음 받았고, 이제 병자성사에서 마지막으로 도유를 받는다는 의미였지만, 여기서 ‘마지막’이란 말이 인생의 마지막이란 뜻으로 오해되어, 신자들은 병자성사를 마치 ‘죽음의 선고’처럼 여겼다. 트리엔트 공의회도 병자성사에 대해 ‘삶의 마지막 순간’, ‘임종’ 등의 말로 죽음과 연결시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도유는 병자들, 특별히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다고 보이는 위독한 병자들에게 집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자들의 성사라고도 한다” (「종부 성사에 관한 교리」, 제3장; DS 1698항). ‘병자의 도유’, 병자성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개혁을 통하여 병자성사에 대한 옛 전례 전통을 복구시켰다. 무엇보다 먼저, 이 성사를 ‘종부 성사’ 대신에 ‘병자의 도유’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죽음을 준비시키는 성사가 아니라 죽을 위험이 엿보이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성사로 소개한다. “‘종부 성사’는 또한 더 적절히 ‘병자의 도유’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는 생명이 위급한 지경에 놓인 사람들만을 위한 성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이 성사를 받는 적절한 시기는 이미 신자가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는 때로 여겨진다” (전례 헌장, 73항).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믿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예식에 관련된 기도문의 개정을 요구하면서, 이와 더불어 고해성사, 병자성사, 노자 성체로 이어지는 연속 예식을 마련하도록 명령하였다. 1972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승인한 「병자성사 예식: 병자의 도유와 사목적 배려 예식」은 이 성사의 거행에서 무엇보다 신앙이 드러나야 함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사실 병자의 믿음이, 그리고 이 성사가 지닌 효력의 원천인(야고 5,15 참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며 성사로 보증하는 다가올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는 교회의 믿음이 병자를 구원하는 것” (「병자성사 예식 지침」, 7항)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중죄 중에 완강히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는 병자 도유를 주지 말아야 한다” (「병자성사 예식 지침」, 15항)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죽음을 앞둔 이들 곁에서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호스피스 봉사자와 수도자 모습. 그리스도의 고난을 채울 자세 병자성사는 질병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답이 되어야 한다. 병자를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복음 말씀을 따르는 것이고, 육체적 치료와 영적 위로를 동시에 해줌으로써 인간 전체를 돌보는 것이다 (「병자성사 예식 지침」, 4항 참조). 따라서 병자성사는 의학 치료의 대체물이 아니며 병원 치료와 경쟁하지도 않는다. 환자가 의사한테 가지 않고 먼저 사제에게 달려오거나, 사제가 환자의 육체적 치유를 전혀 기대하지 않고 기도문만 외우는 것도 문제이다. 사실 사제와 “병자들만 질병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의사들과 병자를 돌보는 모든 이도 병자들의 정신과 육체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시도하고 연구하고 실험하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병자성사 예식지침」, 4항). 비록 육체의 치료가 성과 없이 죽음으로 끝난다 해도, 병자와 함께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 곧 파스카 신비 안에서 인간의 질병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응답을 찾는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울 자세를 갖추고, 피조물인 우리가 마침내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에 들도록 기다려야 한다” (콜로 1,24; 로마 8,19-21 참조; 「병자성사 예식지침」, 4항). 병자성사 예식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여 치유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앓는 사람은 고쳐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주어라. 나병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마태 10,8).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열두 제자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마귀를 많이 쫓아내고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주었다” (마르 6,12-13). 병자성사는 말씀의 전례로 시작하여 성사의 핵심 부분인 안수와 도유로 이어집니다. 이는 말씀과 성사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말씀의 전례에 이어 사제는 말없이 병자에게 안수하는데, 이는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청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교가 축성한 성유를 병자의 이마와 두 손에 바르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이 병자를 도와주소서. 또한 이 병자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주소서(병자성사 예식서)." 그리고 마침기도를 바칩니다. 수세기 동안 죽음에 임박한 중환자만이 이 성사를 받게 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 성사를 종부성사 즉 '마지막 도유'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병자의 성사'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종부'는 더 적절히 표현하자면 '병자의 도유'라고 할 수 있으니 이는 죽을 위험이 임박한 이들만을 위한 성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면 벌써 이 성사를 받기에 합당한 시기가 된 것이다. (전례헌장 73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