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교리 ▒▒ /∞가톨릭교회교리

[교회 상식] 감실(龕室)

Berardus 2019. 4. 5. 15:57




    ★감실(龕室)


    성체 모셔두는 장소이자 그 앞에서 기도하는 공간 등불 켜 주님 현존 알려야 ■ 감실(龕室, tabernacle, tabernaculum) [감ː실] -성당 안에 성체를 모셔 둔 곳-
    성당을 찾으면 미사가 없는 시간에도 제대에 늘 불이 들어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감실(龕室) 안에 성체가 모셔져 있음을 알리는 등이다. 감실이라는 말은 본래 신주(神主)나 불상(佛像) 등 종교적으로 신성시되는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방이나 사당 등의 공간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교회가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성체를 모셔두는 장소를 감실이라는 말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다. 감실을 뜻하는 라틴어 타베르나쿨룸(tabernaculum)은 본래 이집트 탈출 때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신을 나타내고 그들 가운데 머문 이동식 장소. 즉 성막(聖幕, 탈출 26,1-14)을 뜻하는 말이다. 현재 감실은 성체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지지만, 이 말 자체는 천막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성막은 솔로몬 시대에 와서 성전으로 대치됐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감실은 병자성사의 영성체를 위해 성체를 보관하고자 마련됐다. 제1차 니케아공의회(325년)에서 임종자를 위한 성체 규정이 마련되면서 성체 보관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4~5세기경 성당에 성체를 모시기 시작했다. 이후 제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에서는 성체의 안전을 위해 감실을 열쇠로 잠그도록 했다. 감실은 단순히 성체를 모셔두기 위한 곳이 아니다. 우리가 성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흠숭하고, 그 앞에서 기도하기 위한 공간이다. 교회법은 감실 안에 성체를 보존하는 성당은 매일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신자들이 성체 앞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개방하라(937조)고 명시하고 있다. 또 감실은 성당 안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기도하기 적합하게 설치돼야 한다(938조)면서, 성체가 보존되는 감실 앞에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표시하고 현양하는 등불을 항상 켜야 한다(941조)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성당은 성체가 모셔져 있는 집을 말한다. 성당에 본당 신부가 계시지만, 진짜 본당 신부님은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이시다. 미국의 열심한 교우들을 보니까, 차를 타고 가다가도 성당이 보이면,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는 것을 보았다. 감실 안에 계신 주님께 흠숭의 예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 한국 교우는 성당에 가면, 성당 마당의 성모상 앞에는 인사와 기도를 하면서도, 감실 안에 계신 주님께는 가지 않는다.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 성체 중심의 신앙생활이 되어야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알퐁스 그리고리오 성인은 단 15분의 성체조배가, 하루에 우리가할 수 있는 모든 선업보다 주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린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기도하는 모습인데, 그중에서도 제일 가치 있고 아름다운 모습이 감실 앞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일 것이다.

    내가 있는 수도원에는 성체 조배실이 따로 있는데, 그 곳에만 전기보일러가 있어, 겨울에도 가장 따뜻한 곳이라, 성체조배를 많이 하기를 권하고 있다. 성체조배는 먼저 감실안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믿어야 한다. 첫번째로, 큰 절이나 무릎 장궤로 흠숭의 예를 드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나를 업어다 안아다 주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과 흠숭을 드린다. 십자가상에서 죽기까지 나의 죄를 대속하시고 사랑하신 주님께, 감실안에서 나에게 사랑을 주시고자 기다리시는 분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 두번째로, 감실안에서 우리에게 사랑과 축복을 주시고자, 대화를 하시고자 기다리시지만, 우리의 냉담과 무관심 배은망덕으로 외롭게 계시는 주님을 위로해 드린다. 특히 대죄 중에 성체를 영함으로 성체안의 주님을 모독함으로, 가장 주님을 모욕하고 아프게 해 드린 죄를 대신 속죄하고 보상하는 기도를 바친다. 세번째로, 자신의 실존적인 처지와 영혼상태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기도를 바친다. 주님께서는 속임을 당할 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는 진실한 분이시기에 진실한 기도를 원하신다.

    아빌라의 대 데레사 성녀는, 묵상이란 많이 생각하는데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우리 교우들은 머리속에서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줄로 착각한다. 그러지 말고 '좋으신 주님' '사랑의 주님'하고 불러야 한다. 제일 처음에는 어색하고 버벅대고 말도 안 되지만, 자꾸 하다 보면 성령께서 깨달음을 주시고, 올바르고 진실한 내용으로 기도하게 해 주시고, 기도의 응답을 주시면서 잘 기도하게 해 주신다. 피아노치면서 피아노가 늘고, 수영하면서 수영이 늘고, 운전하면서 운전이 늘듯이, 기도하면서 기도가 느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6절에는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라는 말씀이 있다. 성체안에 계시는 주님께 대화를 하다 보면, 성령께서 진실한 기도를 하게 하시고, 기도중에 기도의 응답을 성령께서 주시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존재론적 안정을 주신다. 네번째로, 진실한 대화가 끝나면 새로운 삶의 결심을 한 두가지 하고, 다섯번째로, 그 결심이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도록 구은(求恩)을 하면 된다. 인류의 최초의 성체조배자는 성모님이시다.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성모님의 피와 살을 취하고 태중에 들어오셨다. 태아로서의 예수님을 만 9개월 동안 모시면서, 성모님은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대화하시며 기도하셨다. 그리고 성모님과 요셉 양부는 구유에 누워계시는 예수님앞에 무릎을 꿇으셨다. 아기 예수님 안에 감추어진 천주 성자 위격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우리도 감실 앞에서 진득하게 앉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모든 하소연을 다 들어 주시는 주님께서 확실하고 분명한 응답을 주신다. 믿음으로 감실 안에 계신 주님을 관상해도 되지만,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예수님의 성화나 사진을 떠올리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마음의 사랑을 드리면 관상 기도가 된다.

    고향으로(그리스도의 향기)

    ♥성체 조배 ♥ 하느님 당신은 밀떡 형상 안에 숨어 계신 나의 영원한 생명이며 사랑 온갖 행복의 원천 하느님은 안 계신 데 없이 우주 안에 어디든지 충만히 계시지만 감실 속 밀떡 형상 안에 더욱 강력하게 현존하시고 아가가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빨며 엄마의 가슴을 어루만질 때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이 아가의 영혼 속 깊이 스며들 듯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살아 숨 쉬듯 아주 자연스러운 것 하느님 사랑을 즐기며 영혼 속 깊이 뿌리내리는 행복한 시간 성체께 온 마음으로 기도하면 내가 사는 공동체 내가 사는 나라 구석구석 내가 사는 지구촌에 봄비처럼 촉촉이 빛과 사랑과 힘의 원천인 성령을 충만히 내려 주시네. -영혼의 동반자 / 최남순 수녀 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