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헬레나의 몸은 왕대비라는 높은 지위에 있고
또한 조폐권까지 가지고 있어 그녀의 부유함은 비할 데가 없었으나,
그녀는 빈민에게 희사하거나 성당 건축을 위한 것이라면
한 푼도 아끼지 않고 모든 원조를 제공했으며,
자기의 존귀한 신분을 잊고 천한 사람들과 함께 예식에 참여도 하고,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콘스탄티노 황제는 그 후 자기의 기념 도시인 동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폴리스, 콘스탄티노의 도시라는 뜻이다)을 그 수도로 정했다.
헬레나는 예수께서 일생을 지내신 팔레스티나 지방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살게 됨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또한 그녀의 유일한 소망인 성지 순례를 마침내 326년에 이루었다.
그때 교회의 원수들은 옛날의 성스러운 유물을 없애기 위해 갈바리아 산상에 세워졌던
주님의 십자가를 어딘가로 치워 버리고 그 대신 그 곳에다 베누스 여신의 동상을 세워 놓았었다.
헬레나는 여러 곳을 발굴해 고생 끝에 겨우 주님의 십자가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그녀의 문장은 십자가이다.

헬레나는 또다시 주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과 주님의 승천지인 올리브 동산에
기념 성당을 건축하고 많은 유물을 모시고 콘스탄티노플에 귀환했으나
얼마 후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80세였다.
그녀의 상본은 보통 머리에 아름다운 관을 쓰고 화려한 복장에 망토를 두르고
위엄을 갖춘 왕대비의 복장으로 십자가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그린다.

밀라노칙령
Edictum Mediolanense
313년 2월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치니우스(Licinius)가
밀라노에서 회담하고 6월에 발표한 칙령으로
로마제국의 전 영토 내에서 그리스도교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따라 박해시대에 몰수되었던 교회의 재산이 모두 반환되었고,
그리스도 교인을 속박하던 모든 법률은 폐지되었다.
이 칙령은 리치니우스가 막시미누스 다자(Maximinus Daza)를 무찌른 후
오리엔트 총독에게 보내 <박해자의 죽음에 대하여>
(De mortibus persecutorum, 348)란 서한 속에 실려 있었고,
이것이 다시 락탄시오(Lactantius)와 에우세비오(Eusebius)에 의해 인용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때문에 밀라노칙령은 양 황제의 의견차로 인하여 밀라노에서 공포되지 못하였고,
칙령이라기보다는 동방지역의 총독들에게 보낸 포고문의 형식이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성 콘스탄티누스 대제 San Costantino Imperatore 축일:5월21일,게시판1773번.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14일.게시판639번,1364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