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귀국한 히야친토는
수도 크라코우에 도미니코회의 수도원을 세워
이를 하느님이신 성삼위께 봉헌하고, 그곳을 근거지로 여러 곳을 순회하며 설교를 했던 바,
곳곳에서 큰 성과를 거두게되었다. 그는 각지에서 대환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열렬한 기도와 고행의 생활은 기적을 행하게까지 되었으므로
사람들의 그에게 대한 신뢰는 지극해서 제각기 앞을 다투어 모여와
그의 설교를 들었던 것이다.
히야친토가 프러시아 지방에서
전교를 하기 위해 친구와 더불어 단치히시에 가려고
반달룸 강변에 도착한 때였다.
때마침 장마로 인해 잔뜩 불은 강물은
무섭게 구비지며 흐르고 다리도 배도 없는 지라 더욱 막연한 일이었다.
그때 히야친토는 잠시 땅에 무릎을 꿇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를 하고 일어나
강물 위에 십자를 긋고 나서 동료들과 같이 수도복에 붙은 망토를 깔고
그 위에 서서 건너게 되었는데 마치 배를 탄 것처럼 조금도 빠지지 않고 잘 건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의 시성 조사록에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기적이다.
그는 중요한 도시마다 수도원을 세우고 일대 사도적 활약을 개시했다.
그러던 중 달단족의 내습으로 인해 많은 수도원이 파괴되었으나
그는 이런 불의의 재화에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즉시 복구에 착수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열의로 인해 어떤 때는 철야 기도를 했으며,
침대는 땅바닥이요 베개는 돌로써 고신극기의 생활을 하면서 그의 사도직을 완수 하기 30년간,
그의 육신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 1257년 8월에는 중병에 걸려 쓰러지게 되었고,
그가 항상 사랑하던 성모 마리아의 대축일인 성모 승천 대축일에 병자 성사를 받고
세상에서 닦은 그 공로의 보수를 받기 위해 천국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의 나이 70세였다.
그는 폴란드의 사도로 공경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