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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간 농부♡

Berardus 2022. 6. 10. 06:39

♡천국에 간 농부♡

 

 

독일 그림 형제의 민담 중에서

천국에 간 농부라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가난하지만 신앙심 깊은 농부가

죽어서 천국 문 앞에 도착했다.

같은 시간 아주 부유한 남자도 천국 문 앞에 왔다.

그때 열쇠를 가지고 베드로 사도가 나타나서

문을 열고 부자를 들여보내 주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농부를 보지 못했는지 문을 닫아 버렸다.

부자가 환영을 받고 있는지

흥겨운 음악과 노래 부르는 소리가

문밖에 있는 농부의 귀에 들렸다.

그러다가 다시 조용해지더니

베드로 사도가 나와서

천국의 문을 열고 농부를 들어오게 했다.

농부는 당연히 자신에게도

환영하는 음악과 노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위는 조용했다.

물론 농부는 사랑이 넘치는 환영을 받았고

천사들도 농부를 반겨 주었지만

아무도 농부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농부는 베드로 사도에게 물었다.

“왜 저를 위해서는 부자를 환영했던 것처럼

노래를 불러 주지 않습니까?

천국에서도 지상과 마찬가지로 차별이 있는 모양이죠?”

그러자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대답했다.

“천만에요. 당신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사람입니다.

저 부자와 똑같이 천국의 모든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는 당신처럼 가난한 사람은 매일 오지만,

부자는 백 년에 겨우 한 사람밖에 오지 않는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선택은 모든 사람이라는 포괄적이고 애매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것이다.

곧 부자와 가난한 이가 있다면

누구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부자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되면

거기에 따라오는 결과들 역시 부자들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면

결과들 역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것이 된다.

우리 교회의 선택은 어떠해야 되겠는가?

우리의 우선적인 선택은 가난한 이들이 되어야 한다.

 

최후의 심판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가난한 이들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다.

예리코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루카 10,30 참조)이 바로 예수님이다.

초주검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이 부르심에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이 응답했고 예수님을 도와주었다.

지금 가난한 예수님들이 강도 맞아 초주검이 되어서

우리를 하느님 사랑의 일꾼으로 부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신다.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과 하느님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 사랑은 ‘옆집의 성인들’을 통하여,

곧 자신의 소박한 삶으로 그리스도 사랑의 힘을

명확히 보여 주는 사람들을 통하여 가시적으로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 방식과 수많은 수단을 활용하시어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으십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그들을

일으켜 세워 주는 우리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또한 다시금 따스한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우리의 마음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우리의 동행이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