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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7월23일) 성 에제키엘 예언자

Berardus 2022. 4. 9. 19:04
 
 
The Vision of St Ezechiel-COLLANTES, Francisco

1630.Oil on canvas, 177 x 205 cm.Museo del Prado, Madrid.

 

4월 10일(7월 23일)

성 에제키엘 예언자

St.Ezechiel.
Prophet Ezekiel
Sant' Ezechiele Profeta
Ezechiele = Dio è la mia forza, dall'ebraico
기원전 예언자. 바빌론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남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유배당해 간 예언자이다.

22년동안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하느님 말씀을 전하신 분이다.

 
집회서 49:8
에제키엘은, 주님께서 거룹의 수레 위에서 보여 주신 영광스러운 영상을 본 사람이다.
 
에제키엘 1:3
그 날 부지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가 바빌론의 그발강 가에서 야훼의 말씀을 받았다.
거기에서 그는 야훼의 손에 잡혔던 것이다.
 
에제키엘 24:24
이 에제키엘이 너희의 상징이다.
너희는 그가 하는 대로 하여라. 이 말이 맞거든 내가 주 야훼임을 알아라.


 
구약성서 대예언서에 속하는
 에제키엘서의 저자인 성 에제키엘(Ezechiel)은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한 사건을 전후로 20여 년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였다.
 에제키엘서는 총 4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에제키엘 자신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에제키엘은 ‘부지’라는 사제의 아들이었다(1,3).
그래서 예루살렘과 성전이 그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이룬다.
사실 ‘사제’가 에제키엘서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그는 혼인도 하고, 자기 집에 원로들을 모아 놓고 말을 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8,1; 20,1).
 
그런데 에제키엘서를 보면
그가 매우 독특한 예언자임을 알 수 있다.
구약성서의 가장 신비로운 인물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는 그는,
환시들을 보고 때로는 며칠씩 황홀경에 빠진다(1,1. 4-28; 3,10-15; 37,1-10 등).
 많은 상징적인 행동을 하고, 이따금 농아나 마비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또 집에 앉아 있으면서 환시 속에 예루살렘을 돌아다니기도 한다(8장).
 
에제키엘은
하느님과 동족에 대하여 열정을 지닌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동시에 냉철하고 심사숙고하고 자기의 생각을 엄격한 논리에 따라
 전개시키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훌륭한 신학자였다.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인 성전과
그 의식에 관하여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40장 이하),
 민족의 역사와 전통도 자기의 독창적 역사관을 내세울 정도로
 깊이 알고 있었다(16장, 20장, 23장 참조).
그는 또 널리 퍼져 있던 신화나 동화 같은 것을 과감히 받아들여
 자기의 가르침에 적용시키는 개방된 신학자였다.
그리고 세계정세(25-32장)는 물론, 당시 세계 최대의 무역항이었던
 티로의 교역 내용까지도 훤히 알고 있었다(27,12-25).
또한 조선 기술도 거침없이 서술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의 소유자였다(27,3-11).
 
이러한 박식함은 예언자의 사명 수행에 필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듣는 유다인들은 국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국제적으로 보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이스라엘은 ‘반항의 집안’이라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듯,
 에제키엘의 청중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들이었다(2,3).
그래서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예언자는 자기의 지식을 총동원하였을 뿐더러,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하느님 백성 전체와 그 구성원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효과적으로 선포하려는 노력이었다.
 
사실 에제키엘은 사목자였다.
그는 ‘파수꾼’으로 세워졌다(3,16-21; 33,1-9). 파수꾼은 성안에 있는
 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주변을 살피고,
작은 위험이라도 닥쳐오면
사람들에게 바로 알려, 준비를 갖추고 재난을 막거나 피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예언자 파수꾼’은 외부의 위험만 알리지 않는다.
각자에게 해당되는 경고를 개별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악인에게는 악을 버리고 돌아서라고 경고하고,
의인에게는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해야 한다.
 이 파수꾼은 자기에게 맡겨진 이들의 삶과 죽음에
 개인적으로 깊이 관여하는 사목자인 것이다.
 
이 점이 에제키엘을
그 이전의 예언자들과 구분 짓게 하는 큰 특색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시대의 요청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다른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백성 전체에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공동체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회개를 부르짖으며 또 구원을 약속하였다.
그런데 에제키엘의 시대는 기존의 공동체가 와해되는 때였다.
 유다 왕국이 멸망하기 전부터 이미 종교, 정치,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민족 전체가 불행에 빠지면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18장).
 
그래서 예언자는 공동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못지않게
 각 구성원에게도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예언자상도 바뀐 것이다. 에제키엘은
시대의 요청에 따라 달라진 예언직에 과감히 투신하였다.
 어떤 면에서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지만,
그는 주저 없이 말씀의 선포에 모든 것을 바쳤다.
교회에서는 에제키엘을 예언자이자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다.
 
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에제키엘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017-6021쪽. 
-(가톨릭홈에서)-


 
에제키엘서는 어떤 성서인가요?

이 책은 예언자 에제키엘이 말과 삶으로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적은 책이라 하여 그 예언자의 이름을 따서 ‘에제키엘’이라 했어요.
 후기 예언서 중 이사야, 예레미야와 함께 분량이 많아
 대예언서로 분류되지요.
에제키엘은 본래 사독 계열의 사제인 부지의 아들로 태어난 예루살렘의 사제였어요.
그 이름의 뜻은 ‘하느님은 강하시다’ 또는 ‘하느님께서 강하게 하신다’입니다.
그는 바빌로니아가 여호야긴 왕을 잡아간 일차 유배 때(기원전 598년)
 바빌로나아로 끌려갔다가,
오년 후인 기원전 593년경 바빌로니아의 그발 강가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어요.
그 당시 시드키야가 다스리던 유다는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며 이집트에 의존하며 안일하게 살고 있었어요.
이미 예루살렘에서 예레미야의 활동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에제키엘은 예언자로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면서
 아울러 하느님의 새로운 구원의 약속을 선포하였죠.
그는 기원전 571년까지 22년 동안 예언자로 활동하였답니다.
 
언제 누가 썼나요?
물론 이 예언서의 골격은 에제키엘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죠.
 아마도 그가 활동하던 시기(기원전 593-571년)에 대부분의 내용이 기록되었다고 여겨져요.
 하지만 현재의 에제키엘서는 그의 정신과 사상을 잇는 일단의
 사제들(에제키엘 학파)이 그의 예언을 시기별로 새롭게 배열하면서 가필하고
 보완하여 편집 완성한 것이라고 추정해요.
적어도 바빌론 유배를 끝내고 돌아갈 때쯤(기원전 538년)에서는
 그 꼴이 완전히 잡혀 있었을 거에요.
 
왜 쓰여졌나요?
에제키엘은 바빌론 유배시기를 전후하여 그 전에 활약했던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맥을 잇고 유배기 후반부에 활동했던 제2이사야보다는 앞서는 예언자입니다.
 다른 동포들보다 먼저 바빌론 땅에 끌려왔던 에제키엘은 남아 있는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는 동시에
 끌려온 동포들에게 야훼신앙과 희망을 안겨주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먼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이는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계명을 충실히 지키지 않는 죄 때문에 받는 하느님의 심판임을 분명히 밝혀요.
그러나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이므로 의롭게 생활하면
살 길을 열어주신다고 알려주죠.
 
무엇보다도 사제이자 예언자인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온 세계에 미치는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을 특별히 강조해요.
그분이 이스라엘을 비롯한 각 나라의 불의와 불충을 심판하시는 뜻은
당신을 알게 하여 당신께 돌아와 바르게 섬기게끔 이끄시기 위힘이었어요.
궁극적으로 그분은 새 마음을 지닌 새 백성들이 당신을 섬기는 새로운 성전,
새 세계를 이루시려는 구원의지를 강하게 지니셨죠.
오늘도 에제키엘은 대변혁기에 처한 우리에게 새롭게 각성하여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과의 계약에 충실할 것과
 모든 사람과 형제적 사랑을 나눌 것을 일러주고 있어요.
하느님의 심판은 언제든지 임할 수 있으니, 새 마음과 새 정신을 갖고
새롭게 열리는 하느님 백성의 미래에 동참하라는 촉구인 셈이죠.
-(가톨릭홈에서.성서와 함께.자료제공)-



▶ 예언자 
한자  預言者 
라틴어  propheta 
영어  prophet 
  
‘예언자’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prophetes인데,
 이는 예언자의 기본성격을 암시하는 말로
다른 이를 위하여(pro) 말하는(phemi) 자라는 뜻이 된다.
 ‘예언자’의 히브리어 nabi가 이와 같은 뜻으로 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는 아마도 ‘부르다’라는 어원(nabu)의 수동형이었을 것이다.
즉, 이 히브리어는 능동형으로 ‘하느님의 대변자’를 가리킬 사람을 가리킬 가능성도 있으나,
그보다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느 경우에나 중심 개념은 신적(神的) 교제를 나타내는 것이며,
 만일 어원이 이 개념을 확실히 나타내지 못한다 해도 성서에 나타난
실제 역사를 통해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예언은 대개 하느님의 힘이나 성령의 힘에 의거하였기 때문에
(민수 11:25-, 1사무 10:6 · 10, 19:20 · 23)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사람(1사무 2:27, 1열왕 12:22, 13:1-, 17:24, 20:28)
또는 성령의 사람(호세 9:7)이라고도 한다.
  
예언자들은 미래에 대한 예언만을 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일을 과거와 연관시켜 얘기하는 등 과거 · 현재 · 미래를 다 예언의 소재로 했고,
심판에 대한 예언과 구원에 대한 예언을 동시에 하기도 했으며,
이방인에게나 자기 민족에게나 차별없이 예언하였다.
예언의 내용은 신학적인 것만 다룬 것이 아니라 정치(호세),
사회적(아모, 미가) 문제들도 다루고 있는데, 정치적인 예언은 신학적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예언자들이 부름을 받았던 구약성서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예언자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 설정되었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사야 6장 1-13절, 예레미야 1장 4-16절,
에제키엘 1장 1절-3장 2절, 아모스 3장 7-8절, 7장 14-16절 등의
내용에서 다음과 같은 예언자의 역할들이 밝혀진다. 예언자는 야훼를 대리해서 말한다
(이사 6:8-9, 예레 1:9). 예언자직은 예언자가 되기를 꺼려하거나
 예언자적 자질이 없는 사람에게도 강제적으로 주어진다(아모 3:7-8, 예레 1:7-8).
 하느님은 그의 말씀을 예언자에게 전한다(이사 6:9, 예레 1:7-9,
에제 2:8-3:3), 그리고 이러한 교제는 훗날 신비주의자들에게 알려진 것과
유사한 환영과 소리와 혼란된 상태 등을 포함한다.
  
성서의 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자이며 영감을 받은 대변자이다.
그러나 예언자들이 직접 예언서를 쓴 것은 아니다. 그
들의 말은 구두 전승으로 보존되었고 영감을 받은 기술자들이
 전승된 말씀들을 기록하고 정리한 것이다.
현재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성서는 다른 기술자들에 의해 편집되고 배열되고
 다소 추가되었으나 예언자들이 전한 말씀인 것이다.
  
역사에 대한 현대의 관심은
원래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가려내려는 노력에 집중되어 왔다.
이러한 노력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를 재건설한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일일 수 있으나
신학적인 해석의 견지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영감을 받은 예언서이다.
 예언서에 현재 나타나는 구조를 편집의 역사(Redaktionsgeschichte)와 함께
 연구하는 것이 종종 성서 해석의 효과적인 접근 방법이 되고 있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다니엘 등
 4명의 주요 예언자들과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야, 요나, 미케아,
 나훔, 하바꾹, 스바니야,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 등 12명의 준 예언자들로 구분된다.
 ‘주요’와 ‘준’이라는 용어는 예언자들이나 그들이 남긴 메시지의 상대적인 중요성과는
 상관이 없으며 이들은 단지 구약성서의 예언서의 개별적인 범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구약성서에서 예언자적 명칭과 직책이 현대 성서의 16명의 교회법적인 예언자들
즉, 성서를 직접 기술한 예언자들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엘리야와 엘리사(Elisae) 같은 이들도 나타나는데 이들의 말은
 거의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이들도 다른 예언자들이나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의 영감적인 전달자였다. 구약성서시대에는 예언을 하고
 보수를 받았기 때문에(판관 13:17, 1사무 9:7) 진리보다도 이를 위해 예언하는
 거짓 예언자들도 있었는데(1열왕 13:7, 14:3, 2열왕 5:22-27, 8:8, 아모 7:12, 미가 3:5) 이들 중에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함부로 예언한 사람들(예레 14:15, 23:32, 27:15, 29:9, 에제 13:6),
자신의 생각을 예언처럼 선포한 사람들(이사 9:14, 예레 5:31, 6:13, 14:14, 23:25, 27:10 ·
14, 에제 13:2-23), 충실치 못한 예언을 한 사람들(스바 3:4) 등이 있었다.
 
신약성서에는
초기 교회의 예언자들의 경험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이들도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나 마찬가지로 예언하고 훈계하는 직무를 수행하였으므로
신약성서의 예언자의 개념은 구약성서의 예언자의 개념을 계승하고 있다고
 결론지어도 좋을 것이다.
  
[참고문헌] R.A. Knox, Enthusiasm, New York 1961 /
 J. Lindblom, Prophecy in Ancient Israel, Philadelphia 1962
/ N. Fuglister, Prophet, Frices Hb The Grdbgr 2:350-372.
-(가톨릭대사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