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연중 제6주일
척박하고 가난해도, 내 옆의 주님 믿기에
제1독서 : 예레 17,5-8
제2독서 : 1코린 15,12.16-20
복음 : 루카 6,17.20-26
낯설고 힘든 이방인의 일상 속에도
막연한 두려움과 욕심 떨쳐버리고
하느님 부르시는 대로 걸음 옮기면
편안하고 복된 삶 살아갈 수 있어
오늘 독서와 복음을 보면서
광야의 척박함과 세상에 대한 가난함이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조금 더 가볍게
응답할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함이 복되고 행복하다고 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한국에 있을 때
스스로 조금 바쁘게 지내려고 했었습니다.
젊어서 힘도 있고 일하는 것이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사제관 칠판에 할 일들, 공부할 것들,
그리고 참여해야 하는 교육이나
세미나들을 많이 적어 놓고 실행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은 아침에 성당에 가서 성체조배를 하는데,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하고 있던 일에 대한 생각과
계획들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마 ‘성당 창호 공사를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던 때였는데요.
이런저런 구상들을 해보다가 문득 마음속에서
‘내가 어떤 일을 계획하면서도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많아서인지,
예수님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광야의 메마른 곳
몇 년 전에 피정 지도 신부님이
제 외국 생활을 광야로 표현해 주신 적이 있는데요.
낯설고 뭔가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많았던 곳에서 체험한 것이 있습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힘들었습니다.
스스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저를 압박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를 들면 외국어 학원 광고를 많이 봐서인지,
6개월이면 원어민처럼
다른 나라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급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 외국에 나가면 평화방송 미션에 나오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도 돕고 건물도 짓는 줄 알았습니다.
어떤 가시적인 성과나 결과가
눈에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습과
상황을 보게 되니까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압박하고 뭔가 찾아서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면역력 결핍 때문인지 원형 탈모도 있었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나서야 내 생각의 틀이나
고정관념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기도를 하면서 ‘외국 생활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의
틀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 내려놓았을 때는 내가 움켜쥐고 있는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각이 무엇일지를 생각하고 향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선이 내 생각과 의지가 아니라,
그분이 바라시는 것을 바라보고 향하는 느낌이 들었을 때,
마음이 참 편해졌었습니다.
물론 그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생각이 그리로 향한 자체로
다른 기대나 집착이나 욕심과 같은 불순한 생각들이 놓아지고,
바른 자리에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막 교부의 금언 가운데
“흔히들 사막을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의 연속으로 생각하지만,
그곳에는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들이 있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제가 경험한 낯선 곳에서도 시선이
주님께로 들어 올려지고 향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물가에 심긴 나무
외국에 살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또 스스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자주 깨닫게 됩니다.
조금 얄미운 느낌이지만,
내가 할 수 없음을 고백할 때
비로소 그분을 찾고 그분에게 시선이 갑니다.
물론 처음에는 원망하는 느낌도 있었고, 질문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현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서
자주 듣는 그 ‘현존’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조금 이해했지만 마음과 삶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답답함이 밀려왔을 때,
다른 지역 수녀님들께 가서 며칠 함께 지내며 성
지 순례도 하고 같이 기도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수녀님들과 저녁기도를 하고 성체현시를 했는데요.
성체를 한참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기 감실에 계신 예수님도
무언가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는구나.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면서 위로도 주시고 일하게도 하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존재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살짝 체험되었습니다.
그러한 빛이 살짝 비춰왔을 때,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들면서
‘여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 시선을 들어올리고,
그분의 삶의 방식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물가에 심겨지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예레 17,7-8)
오늘 하루,
나는 세상에 대한 부유함으로
시선도 걸음도 옮길 수 없는 상태인지,
아니면 세상에 대한 가난함으로 가볍게 시선과 발걸음을
주님이 부르시는 대로 옮길 수 있는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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