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version of Saul-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542-45. Fresco, 625 x 661 cm. Cappella Paolina, Palazzi Pontifici, Vatican
사도22,3-16
3 "나는 유다인입니다.
나기는 길리기아의 다르소에서 났지만 바로 이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믈리엘 선생 아래서 우리의 조상이 전해 준 율법에 대해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느님을 공경하던 열성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의 열성에
결코 못지 않습니다.
4 나는 교인이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잡아 감옥에 처넣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이 예수의 교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5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대사제와 온 의회가 증명해 줄 것입니다.
나는 그 사람들로부터 다마스커스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있는 신도들까지도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벌을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6 "길을 가다가 오정 때쯤에 다마스커?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나타나 내 주위에 두루 비쳤습니다.
7 내가 땅에 거꾸러지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8 나는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예수다’ 하는 대답이 들려 왔습니다.
9 그 때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 빛을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신 분의 음성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10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물었더니
주께서는 ’일어나서 다마스커스로 들어 가거라. 거기에 가면 네가 해야 할 일을
모두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1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못 보게 되어 같이 가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커스로 들어 갔습니다.
12 거기에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거기에 사는 모든 유다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13 그가 나를 찾아 와 곁에 서서 ’사울 형제, 눈을 뜨시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이 띄어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14 그 때 아나니아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 없으신 분을 알아 보게 하시고
또 친히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당신을 택하셨습니다.
15 당신이 보고 들은 일을 그분을 위해서 모든 사람 앞에 증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어서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깨끗이 씻어 버리시오.’"
The Conversion of St Paul-ESCALANTE, Juan Antonio Frias y Oil on canvas. Museo Cerralbo, Madrid
1월 25일
사도 성 바오로의 회심 축일
Conversio St. Paulus, Ap
The Conversion of Saint Paul
Conversion of Paul the Apostle
Conversione di San Paolo Apostolo
Born:c.3 as Saul at Tarsus, Cilicia (modern Turkey)
Died:beheaded c.65 at Rome, Italy
성 바오로(67년경)는 벤야민 지파의 유다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유명한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했던 분이다.
그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까지는 사울이라 불렀고, 천막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으며 크리스찬의 열렬한 박해자였고,
첫 순교자이신 성 스테파노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그는 크리스찬들을 박멸할 목적으로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에 유명한 환시를 보는데(34-36년 사이),
이것이 그의 극적인 개종과 더불어 이방인의 사도로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다음,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커스로 돌아오면서부터 그의 파란만장한 선교사 생활이 막을 올린다.
그는 39년경에 바르나바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나고
공식적으로 크리스찬 공동체에 입적한 후,
43년경에 안티오키아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교회의 교사가 되는데,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그의 대 전교활동의 서막을 올린 결과가 되었다.
그 이후로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 여행을 한다.
流湧?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하여 키프로스 섬에 머물렀고 그 다음 지금의 터어키를 통과했다.
사도들의 예루살렘회의 후에 바오로 사도는 제2차 여행을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명백하게 ’12 사도들의 파견’이라고 표현한다(사도 15,36-18,22).
터어키를 다시 횡단하여 프리기아와 그가 아팠던 갈라디아(갈라 4,13)에서 복음을 전한다.
그 다음 루가와 함께 유럽으로 들어와서 필립비 공동체를 세운?희랍 남부).
한 동안 감옥 생활을 한 후 희랍에서 복음을 전한다.
아테네에서의 복음 전파는 철학자들 앞에서 좌절된다.
고린토에 가서 공동체를 세우는데 그 교회는 바오로 사도를 매우 성가시게 하였다.
그후 훈오?되돌아 왔다.
제3차 여행 동안 바오로 사도는(사도 18,23- 21,17)
현재 터어키 지역에 속하는 교회, 특히 에페소 교회, 그 후 희랍에 속하는 교회와
고린토 교회를 두루 다녔다.
밀레도스를 지나면서 바오로 사도는 장로들에게 자기가 당한 고난을 말해준다.
이 말 그대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얼마 안되어 그는 히브리인들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사도 21장). 그는 로마 시민이므로 로마에 항소하였다.
이렇게 로마를 향하여 4번째 여행이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자유의 몸이 아니다(사도21-26장). 60년 아니면 61년에 도착하여
63년경까지 감옥에 갇혔다.
한편 좀 자유스런 몸이 되면서 로마의 그리스도 신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옥중 서간’을 쓴다.
63년경 감옥에서 해방되어 아마도 스페인을 향하여
마지막 여행을 했는지도 모른다(로마 15,24-28).
아니면 다가올 자기 운명을 편지로 써서 알려준 디모테오와
디도의 공동체를 향하여 갔을지도 모른다.
그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67년경 순교를 당하신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바오로의 전(全)생애는 단 하나의 체험-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과 만난 체험-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는 유대교의 열성 신봉자로서 예수님의 모든 추종자에 대해 미움을 갖게 되었고
’교회를 괴롭히기’시작했다.
"그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어 내어 감옥에 쳐 넣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신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자가 되었으며,
단 하나의 목적-화해를 이루고 한 분의 구세주를 체험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도구로서 일하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에
그의 모든 힘을 불태웠다.
바오로의 일생은 지칠 줄 모르고
십자가의 메시지를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에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묻힌다.
그는 죄가 되는 모든 것, 그리고 세상에서 구속되지 않은 모든 것에서 죽는다.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으며, 이미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고, 어느 날
그분처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할 것이다.
부활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며
그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실 것이다.
이 세상에 전하는 바오로의 위대한 메시지는 이러하다 :
너희는 오로지 하느님에 의하여 구원된 것이지 너희가 무엇을 해냈기 때문에
구원된 것은 아니다.
구원의 신앙은 온전히 자유롭고 인격적인 선물이며,
그리스도께 완전히 자신을 맡기는 사랑이고,
율법이 지금까지 이룰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선행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의탁이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고린 13,4-7)
-(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홈에서)-
The Conversion of St. Paul-CARAVAGGIO
1600. Oil on cypress wood, 237 x 189 cm. Odescalchi Balbi Collection, Rome
하느님이시고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아 산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며 구속 사업을 완선하신 그 해의 일이다.
어느 더운 여름 날 저녁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 시(市)에
두 사람에게 끌려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는 눈먼 청년 하나가 있었다.
그 익숙하지 못한 걸음걸이를 본다면 선천적인 소경이 아니라 갑자기 소경이 된 사람 같았다.
과연 그는 두 세시간 전만 하더라도 두 눈이 떠 있었던 사람이었고 말을 타고 위세를 부리며
그리스도교인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그렇던 사람이 어찌해 이와 같은 불행한 자가 되었을까?
그의 이㎱?사울이라고 부르며 시리아주(州)의 다르소에서 태어난
이스파엘 12지파 중의
벤자?지파에 속求?전통 있는 바리사이였다.
유난히 독실한 유다교인이었던 그는 나자렛 예수의 제자들은 모세의 율법을 파괴하는
모독자라 생각하고 이들을 매우 미워하며,
그들을 박해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적합한 줄로 생각했다.
그러했으므로 바리사이 인들이 교회의 최초의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일 때도
사울은 제일 먼저 찬성했던 것이다.
그 후에도 사울은 예루살렘과 갈릴레아의 그리스도교회를 유린하고
신자의 집에 들어가서 남녀의 구별 없이 체포하여 철사로 결박해서
예루살렘의 감옥에 처넣는 등 곳곳에서 혹독한 박해를 가했으므로 아직 남아있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커스로 모이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사울은 유다교의 대사제 앞에 가서 그들을 체포할 수 있는 허가를 받고서
부하 여러 명을 데리고 피난하는 신자들의 뒤를 따랐던 것이다.
다마스커스 도시가 거의 보일 정도까지 왔을 때이다.
돌연 하늘에서 번개와 같은 강한 빛이 발하며 그와 동시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천둥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사울은 그 광채에 눈이 멀게 되고 그 소리에 놀라 땅에 넘어졌으나
잠시 후에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질문하니까
하늘에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고 하셨다.
그때 사울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것을 하느님의 뜻과
모세법에 적합한 정의의 사업인 것처럼 생각했던 잘못됨이 일시에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울은 겸손하게 자신의 잘못된 심정을 인정하고
"주여, 저로 하여금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말하니
"일어나서 시내로 들어가거라.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시는 말씀을 듣고 즉시 일어났으나 왠일인지 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비로소 사울은 자기가 소경이 된 것을 알고 같이 동행하던 사람들에게
인도되어 다마스커스에 들어갔다.
그는 진실한 통회로써 이 시련을 잘 인내했을 뿐 아니라,
3일간 죄의 보속으로 먹거나 마시지도 않고 열렬히 기도를 바치며
하느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겼다.
다마스커스에 있었던 신자들은
예루살렘의 신자들한테 연락을 받아 일찍부터
사울의 박해를 알고 엄중한 경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아나니아라는 열심한 주님의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이 날은 사울이 다마스커스에 들어온 지 3일째 되던 날)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묵시 중에 나타나서
"어서 일어나 ’곧은 거리’라는 동네에 사는
유다의 집으로 가서 다르소 사람 사울을 찾아라.
사울은 지금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손을 넣어
다시 눈을 뜨게 해 주는 것을 신비로운 영상으로 보았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아나니아는 대단히 놀라며 "주님,
그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바 있습니다.
그는 예수살렘에 사는 주님의 성도들에게 많은 해를 끼쳤다고 합니다.
더구나 지금 그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갈 권한을 대사제들로부터 받아가지고
여기 와 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가야 한다. 그 사람은 내가 뽑은 인재로서 그는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제왕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널리 전파할 사람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나니아는 대단히 기쁘고
감격된 마음으로 즉시 사울을 찾아가 손을 얹고 이렇게 말했다.
"사울 형제, 나는 주님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여기 오는 길에 나타나셨던 예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보내시며 당신의 눈을 뜨게 하고
성령을 가득히 받게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하고 말하자,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세례를 받았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커스에 있는 신도들과 함게 지내고 나서
자신의 회개의 진실함을 증명하기 위해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그가 내 이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하신 예언 말씀은
이날부터 적용되어 사방에서 유다인들의 박해를 斌?되었다.
하느님께 특별한 성소(聖召)를 받은 그는 특별한 은총도 받아
순교할 때까지 많은 공로를 세워 성 바오로라는 대사도로
지금까지 게속 공경을 받고 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The Conversion of Saul(detail) -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542-45. Fresco, 625 x 661 cm. Cappella Paolina, Palazzi Pontifici, Vatican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 주교의 강론에서
(Hom. 2 de laudibus sancti Pauli: PG 50,477-480)
바울로는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견디어 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고 그 본성은 얼마나 큰 위엄을 지니며
또 우리 인간은 얼마나 큰 덕행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사도 바울로는 다른 누구보다 더 훌륭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울로는 매일매일 더욱 높은 상태로 올라가고, 매일매일 더욱 큰 열성으로 일어나며,
매일 당하는 위험과 투쟁했습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봅니다."라고 말할 때
그는 이것을 보여 줍니다.
바울로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다른 이들도
자신의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다음의 말로 촉구 했습니다.
"여러분도 기뻐하십시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그는 또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과
모욕과 온갖 수치 앞에서 다시금 기뻐하면서
고린토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정의의 무기라고 말할 때 자신이 이런 것들로 부터 많은
유익을 거두었음을 보여 줍니다.
바울로는 또 원수들의 위협 가운데 갇혀 있을 때 그들의 위협 가운데서 거둔 승리를
기쁜 마음으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매질과 모욕과 욕설을 당할 때
그 승리를 경축하고 전리품을 거두는 승리자인 듯 자랑하면서 다음의 말로
하느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우리 안에서 승리하시는 하느님께 항상 감사 드립니다."
바울로는 영예를 찾는 우리의 열성보다
더 큰 열성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며 견디어 내야 하는
반대와 모욕을 달려가 찾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생명을 구하는 것 이상으로 죽음을 찾았고, 우리가 재화를 추구하는
그 이상으로 가난을 추구했으며,
우리가 일을 마친 다음 휴시을 찾는 그 이상으로 일 자체를 찾았습니다.
바울로가 두려워하고 무서워 한것은 다음 한 가지,
즉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두려워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Ⅸ좡求?것도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 그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바울로는 또 다른 무엇보다도 위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즐거워 했습니다.
이 사랑을 지닐 때 다른 누구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사랑이 없다면 그에겐 제후들과 권력자들과의 친분 관계도 아무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없이 제후들과 권력자들 가운데 사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면서 가장 비천한 사람이 되어
저주받는 사람들 가운데 사는 것을 더 원했습니다.
이 사랑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것은 그에겐 유일하고도 무서운 고통이었습니다.
그 생각마저 지옥이고 책벌이며 영속적이고도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었습니다.
반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는 것은 그에게 생명이요 온 세계요
천상적 상태이고 현세의 선물이요 하느님의 나라이고
후세의 희망과 약속이며, 한마디로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이사랑 외에는 고통스러운 것도 또 즐거?것도 없었고, 이 세상에있는
그 어떤 것도 쓴것으로나 단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로는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을 썩은 풀처럼 멸시했습니다.
폭군들이나 또는 분노를 내뿜는 사람들은 그에게 흡혈모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참을 수 있기에,죽음과 고초와 일천 번의 형벌도
어린이의 장난으로 여겼습니다.
-(가톨릭홈에서)-
[사도]
永독遮?말은 희랍 원佇?아뽀스똘로스(Αποδτολοs)이며, 그 뜻은 ’누구를 보낸다.’
또는 사자(메시지 전달자)라는 말이고,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뽑으신 12 제자라는 뜻으로 통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도라는 말은 희랍어 구약성서에 단 한번 사용하였으며,
이런 뜻의 아라메아어는 예수님 시대 이전에는 사용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예수님께서 생전에 쓰신 말인지,
초대교회 때에 쓰여진 말인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기록의 근거는 이러하지만, 복음 사가들은 예수님께서 첫 파견자들인
12 제자를 지칭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사도들의 증거활동]
사도들의 임무는
그리스도 부활의 사실을 증거 하는 것으로 (사도행전 1, 8. 22 ; 2, 32 ; 10, 39-41),
즉 믿지 않는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믿는 사람들을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 안으로 보다 깊이 젖어 들도록 이끄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증거활동은 두 가지 의미의 특징을 지녔는데
첫째로는 눈으로 보았다는 증거(사도행전 10, 39)와,
둘째로는 크리스찬 믿음의 증거로 신앙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신앙을 현실화 시켜주는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유다스를 대신할
마티아를 뽑을 때 사도가 되는 요건(要件)을 정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오시는 동안,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예수께서 우리 곁을 떠나 승천하실 날까지
줄곧 우리와 같이 있던 사람 중에서 하나를 뽑아
우리와 더불어 주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사도행전 1, 21-22)."
[바오로사도]
바오로 사도는 위와 같은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직 임무를 받았다는 점으로 보아 "사도"라는 말은 신약성서에서
이미 광의(廣義)로 풀이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의 소명은 그리스도에 의해 직접 이루어진 점(갈라디아 1, 1)과
특별한 개종(改宗)이었다는 점입니다(로마 1, 1).
바오로는 항상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라고 하였지만,
다마스코스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뵈었던 경험이 사도가 되는 조건에 합당했던 것입니다.
(1 고린토 9, 1).
†주여. 나를 약하게 하소서.
성 바오로는
비상한 은총과 능력을 받았고 또 그것은 바오로 안에서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하느님의 능력이요. 바오로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 바오로로 하여금 깨닫게 하실려고
하느님께서는 바오로에게 매질하고
지나치게 자랑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성 바오로는 이런 약점을 떠나게 해주시도록 세번이나 간청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뿐이었습니다.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2 고린 12.9)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을
힘껏 드러내게 하시기 위하여 바오로를 약하게 하셨다는
말도 안되는 이것을 당신은 깨닫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능력에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가지 은총의 기적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용서하는 우리 자신의 힘을 넘어서기를 두려워 하기 때문에
용서가 가져오는 기적적인 결과를 보지 못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작용해야 할 위치에 우리 자신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활동하는 것을 알아보지 못 할 것 입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우리는 그것을 참으로 믿습니까?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무에서 훌륭한 것을 만들어 내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밀알이 죽어야 합니다.
3월 2일(1월25일)
복자 하인리히 소이에(수소)
Blessed Henry Suso
Beato Enrico Suso (Susone) Domenicano
(Uberlingen, Germania, 21 marzo 1295 - Ulm, 25 gennaio 1366)
Born:21 March 1295 at Uberlingen, Germany as Heinrich von Berg
Died:25 January 1366 at Ulm, Germany
Beatified:1831 by Pope Gregory XVI
Enrico = possente in patria, dal tedesco
Order of Friars Preachers; Dominicans; Order of Preachers
헨리쿠스 수소(Henricus Suso, 또는 헨리코 수소)는
유명한 도미니코 회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의 뛰어난 제자로,
독일 남서부 슈바벤(Schwaben)의 콘스탄츠(Konstanz)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베르크(Berg)의 헨리쿠스 백작이고, 그의 어머니는 수소 가문의 성녀 같은 분이었다.
그래서 그의 실제 이름은 하인리히 폰 베르크(Heinrich von Berg)였으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수소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3세 때에 콘스탄츠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신비 생활과
신적 사랑을 통해 강한 영적 변화를 체험하고는,
18세에 '영원한 지혜와 영적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콘스탄츠에서 공부를 마친 후 쾰른의 에크하르트의 학교에서 대학 공부를 하였다.
공부를 마치고 콘스탄츠로 돌아온 그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놀라운 현시를 보았으며, 예수 성명을 특히 공경하고, 천주의 모친께
남다른 신심을 지녔기 때문에 가끔 ‘신비가’란 소리를 들으며 생활하였다.
그는 매우 아름다운 신심서적을 저술하였는데,
“영원한 지혜에 관한 소책자”(Das Buchlein der ewigen Weisheit)가 가장 유명하다.
이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작품으로 알려진
"준주성범"(Imitatio Christi)과 함께 여러 세기에 걸쳐서 인기를 누린
수소의 문학적, 신비학적 걸작이다.
그는 1348년 울름(Ulm)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가서 생활하다가
1366년 1월 25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831년 4월 16일 그의 '문화의 길'(viam cultus)을 높이 평가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학자들은 그를 "독일 신비가들 가운데, 아니 어쩌면 모든 신비 저술가들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0권 - '주조, 하인리히',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7869-7872쪽.
-(가톨릭홈에서)-
하인리히 소이에(수소)의 놓아두고 있기- 정달용신부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그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해보면, ‘버리고 떠나 있기Abgeschiedenheit’이다.
또는 ‘두루 놓아두고 있기Gelassenheit’이다.
이것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1260~1328)가 평생을 두고 생각하고 가르친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한때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알지 않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첫째,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원한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둘째, ‘아무것도 알지 않는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안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지 않았다.
셋째,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그가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으로 가난해지려면
‘가진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것이 사물이든 자기 자신이든 ‘가진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가난한 사람’은 ‘버리고 떠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이다.
놓아두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제자였던 하인리히 소이세는 1295년경 3월 21일
스위스의 콘스탄츠에서 출생했다.
콘스탄츠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들어간 소이세는 수도원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1313년부터 1318년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물리학,
형이상학 등을 중심으로 철학을 전공한다.
이어 1319년부터 23년에는 슈트라스부르그 수도회 대학에서,
1323년부터 1327년까지는 쾰른의 수도회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다.
이때 스승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만난다. 콘스탄츠 수도원으로 돌아온 소이세는
선생Lector으로 후배를 가르치고 이후 20년간 그 곳에서 산다. 1330년경
그의 가르침은 이단異端의 의심을 받아 선생으로서의 직책을 정지당한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 시기에 ‘두루 놓아두고 있기Gelassenheit’라는 신비사상을 터득하게 된다.
1347년경 소이세는 독일 울름의 수도원으로 옮긴다. 그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는 ‘두루 버리고 떠나 있기’라고 하는 자신의 신비사상을 익히며 살았으리라 추측된다.
136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울름 수도원에 머물렀다. 소이세는 《진리의 서書》
《지혜의 서》 《생애》 등 중세 독일어 저서를 남겼으며 1831년 복자福者 위에 올랐다.
소이세는 스승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스승의 이러한 가르침을 잘못된 오해로부터 건져낸다.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소이세에 의하면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있는 것이 아니다.’
‘무無’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모든 것의 그리고 일체의 것의
‘근원根源’이며 동시에 ‘목표目標’이다.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리고 ‘저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그리고 일체의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그리고 심지어 자기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그리하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와 ‘하나가 된다’. ‘이렇게 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니-있는 것’ 즉 ‘무無’로 드러나는 ‘단순하고 순수한 하나’와 ‘하나가 된다’.
이것이 하인리히 소이세의 ‘신비사상神秘思想’이다.
‘그르게’ 놓아두기
‘버리고 떠나 있다는 것’ 그리고 ‘두루 놓아둔다는 것’은 잘못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잘못된 놓아두기’가 될 수 있다.
즉 ‘그르게 놓아두기’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 진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의 ‘과업課業’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결코 하나의 되어버린 ‘상태狀態, Zustand’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과정으로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하나의 완성된
그리하여 고정된 상태로 오해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마르게리테 폰 포레테Marguerite von Porete, 1310년 사망)은
‘무無가 되어버린’ 영혼에 대해서 그리고 ‘자유로워진’ 영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한 영혼(사람)은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무無’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에서 벗어나 ‘전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제 이렇게 ‘자유로워진’ 영혼(사람)은 ‘단식’ ‘고행’ 그리고 ‘기도’ 등을 따로 힘쓰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상관없는 일’이다. ‘관심 밖의 일’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람(소이세의 작품에 나오는 ‘이름 없는 무법자無法者’)도 있다.
어느날 소이세에게 사람의 모습을 가진 하나의 형상이 다가 왔다. 소이세가 물었다.
그리고 그가 대답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어느 곳도 아니다.”
“너는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을 원하는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네 이름은?” “이름없는 무법자다.”
“네 이성理性이 목표로 하는 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다.”
“무슨 말이냐?”
“사람이 전적으로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도 세계도 상관하지 않고, 앞도 뒤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구애받지 않는 자유는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올바로 놓아두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내가 설교할 때, 나는 언제나 첫 번째로 ‘버리고 떠나 있기’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즉 사람은 ‘자기 자신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람은 단순한 선성善性 즉 ‘신神 속에’ 들어가서,
그와 ‘하나의 모습eingebildet werden’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 말하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어떤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선한 일werke로부터 벗어나’
, ‘전적으로 자유로워지려 한다’하여 그들을 나무라고 있다.
에크하르트는 루가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10,38-40)를 가지고
그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있는 마르타와는 달리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는, 단순히 ‘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앞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잠잠히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마리아는 그 후 사도들을 따라 다니면서, 부지런히 빨래하고 밥하는 일을 했다.
하인리히 소이세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면서
‘두루 놓아두고 있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서술해 내고 있다. ‘
놓아두고 있는 사람der gelassene Mensch’은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놓아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옳은 일’이나 ‘선한 일’을 한다.
다만 그는 이 모든 일을 그에 마지막까지 ‘집착하지 않고’
그 일들을 ‘놓아두는’ 그러한 마음으로 한다.
‘참으로 놓아두고 있는 사람’은 ‘일 속에서’ ‘쉬고 있다’. 그리고 ‘일 속에서’ ‘한가롭다’.
그리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그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는 일이나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고요하다.
- 정달용 / 신부. 대구가톨릭대 교수(철학). 저서로 《그리스도교 철학》, 다수의 철학 논문이 있다.
도미니코 수도회 성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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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Eckhart Meister(1260?∼1327?)
신비가 복자 요한네스 타울러(Joh. Tauler, 1300-1361)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가난한 이들의
귀한 보물이여!
죄를 짓고
지극히 높으신 우리 임금님을 잃었을때
천사들의 마음을 아프게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를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보물이신 당신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당신을 향해
충고를 구하고
도움을 청하며
몸과 마음의 눈길을 당신께 올립니다
제 마음의 기쁨
유일한 희망
내 삶의 즐거움이여
쓰디쓴 영혼과
동요하는 마음과
눈물맺힌 얼굴로
얼마나 여러번 당신을 바라보는지
당신은 아십니다
지극히 경건하고 복된 동정녀여
당신의 도움이 있기에
온갖 위험에서 벗어납니다
어머니
저의 희망
제 삶의 유일한 위로이신 어머니
오시어
제 상처를 낫게 하소서
제 슬픈 마음에 위안을 주소서
- 엔리코 수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