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춥고 어두운 세상에 따스하고 밝은 빛으로 오신 구세주를 영접하며
이 기쁨을 교구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이 세상에 태어나셨지만,
교회는 매년 전례력으로 성탄을 기념하며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성탄의 참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성탄이 다가오면 설렙니다.
경제 사정이 힘들더라도 집 안에 작은 장식이라도 달아 성탄 분위기를 내고,
성탄 카드와 선물을 준비합니다.
또한 성당이나 모임에서는 성탄 행사를 준비하며 바쁘게 보냅니다.
하지만 외적인 준비에는 분주하면서도
정작 내적인 준비에는 소홀하기 일쑤입니다.
더구나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성탄의 원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축제로 즐기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누구의 탄생일인지는 모르지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지요.
신앙이 없는 이들도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흥청거립니다.
예수님이 사라진 성탄절이 되지 않도록 외적인 행사에만 치중하지 말고
구세주께서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강생(降生)의 신비를 묵상하며 성탄절을 맞아야 할 것입니다.
구세주께서 세상에 오신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나약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구세주 탄생의 의미를 우리는 거듭 묵상해야 합니다.
그분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자신을 낮추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려고만 합니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은 남을 짓밟고 올라서서라도 높아지려고 합니다.
내가 높아지는 만큼 다른 사람이 내 밑에 깔려 낮아진다는 것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올라가지만 마냥 높아지는 것이
우리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 주지는 못합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을 낮춤으로써 오히려 높아지는 하늘나라의 가치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교회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전대미문의 감염병 앞에서 국가는 국경을 봉쇄하고,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경제 논리에 의해 선진국들은 백신을 선점하고
가난한 나라의 도움의 손길을 외면합니다.
개인들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소통하려는 마음도 닫은 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이로 인한 경제 불황은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에게 더 큰 위기로 다가옵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가난하고 독재의 폭압 아래에 있는 나라들과
거기서 탈출한 난민들이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 보면, 경제적 약자와 노인, 병자, 장애인 같은
이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스크로 입과 코는 가려도, 어려운 이웃에게 향하는
따뜻한 시선과 선한 마음까지 가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난 10월 17일, 세계 모든 교구에서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의 개막미사를 거행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현재가 교회와
세계 모두에 있어서 결단의 시기라고 말씀하십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은 코로나19의 유행이 분쟁과 기후 변화,
차별, 폭력, 박해 같은 불평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고 지적합니다.
교황께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세계주교시노드를 개최하여,
우리가 어떻게 ‘함께 가는 여정’을 걸을 수 있을지
하느님 말씀과 형제자매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이라는 주제 아래,
3년 동안 ‘경청, 식별, 협의’라는 단계를 따라 세계 교회의 모든 평신도,
사제, 선교사, 수도자, 주교, 추기경들은 각자의 교회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과 요청에 따라 시노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구는 10년간의
장기 사목 계획을 수립했고, 두 번째 해를 맞이했습니다.
작년에 저는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말씀, 친교, 전례, 이웃사랑, 선교라는 다섯 가지 핵심 가치를
2년마다 하나씩 실천하며 살 것을 제안했습니다.
새해에는 ‘하느님 말씀을 따라’라는 주제로 살아가는 둘째 해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고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바로 우리에게 오신 말씀,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뿌리 내린 말씀의 씨앗을 잘 싹 틔워,
어떤 새도 쉬어 갈 수 있는 큰 나무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힘으로 복음의 기쁨을 살아갈 것입니다.
결국 성탄을 기뻐한다는 것은,
우리 가운데 오신 말씀을 잘 받아들여서 그 말씀의 힘으로 성장하여
,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신앙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기쁘게 한 해를 살아갑시다.
다시 한번,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드리며
, 말씀의 힘으로 이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 내어
희망과 기쁨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도록 노력합시다.
2021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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