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교리]
성품성사
성품성사는 본질적으로 ‘직무’를 위한 성사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1572~1600항)
다른 이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
하느님 본성으로 살아야 하는
직무의 엄중성을 지닌 사제
주교 대리자로 직책·직무 받아
하느님께서 마지막에
우리를 심판하실 때 교회에서 평신도였는지,
수도자였는지, 혹은 성직자였는지를 따지실까요?
하늘에서 성직자들은 평신도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까요?
단테의 「신곡」에는 스스로 하느님을 떠난
고위 성직자들이 지옥에 있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이는 심판의 기준이 교회에서의 직책이 아닌
사랑의 실천임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성직자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무’에서 배제될지언정 ‘직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적 인호”(1582)가 새겨져 ‘엄밀한 의미’로
다시 평신도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1583 참조)
또 죄인인 상태의 사제가 직무를 수행한다고 해서
그 사제를 통해 오는 은총이 더럽혀질 수 없습니다.(1584 참조)
햇빛이 더러운 유리창을 통과해도 빛 자체는 더럽혀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교만한 성직자는 마귀와 같은 축에 드는 것입니다”(1584)라고 말하며
직책에 따라 주어진 직무에 충실한 존재가 될 것을 권고합니다.
이런 의미로 어쩌면 부제가 되고,
사제가 되고, 주교가 되면 하늘나라에 더 들어가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무겁고 엄중한 ‘직무’가 맡겨지기 때문입니다.
그 직무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지옥에 보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가리옷 유다처럼 용서를 청하지 못하고 스스로 하느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기 전에 그의 장자권을 가로챘다는 것
하나 때문에 얼마나 겁에 떨었는지 성경에서 읽어 볼 수 있습니다.(창세 32장 참조)
야곱은 자기 재산과 자기 사람들을 모두 바치고도
에사우 앞에 설 용기를 달라고 밤새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영혼을 맡겨주신 성직자들이 죄나
게으름 때문에 잃게 된 영혼을 보게 된다면 마지막 때에
하느님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이런 면에서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이 새 사제 때
한 강론에서처럼 모든 사제는 서품 때의 첫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사제는) 남을 깨끗하게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하며, 가르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고,
비추기 위해서는 빛이 되어야 하며, 남을 하느님께 가까이 이끌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느님께 가까이 가야 하고, 거룩하게 하고, 인도하고,
지혜롭게 충고하기 위하여 자신이 먼저 거룩해져야 합니다.”(1589)
거룩해진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하느님만이 거룩합니다.
성직자들은 마치 어부의 그물과 같아서
자신의 부족한 면이 있다면 마치 끊어진 그물코처럼
그 부족함 때문에 많은 영혼을 잃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사제들은 그 직무의 엄중성 때문에
더 완전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사제는 누구입니까- 그는) 진리의 옹호자이며,
천사들과 함께 일어서고, 대천사들과 함께 찬양하며,
하늘의 제대에 희생 제물이 오르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며,
인간의 면모를 새롭게 하여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고,
저 높은 곳을 위하여 일합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점을 감히 말하자면,
하느님이 될 것이고 다른 이를 하느님이 되게 할 것입니다.”(1589)
사제가 먼저 하느님의 본성으로 살고
신자들도 그렇게 태어나게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그렇게 하셨고,
사도들은 후계자들에게 그러했습니다.
이것이 주교와 사제, 사제와 신자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부모에게서 그 자녀가 태어납니다.
사도들은 지금의 주교입니다.
주교는 사도의 후계자란 의미로 머리에 ‘관’을,
그리스도의 신부에 대한 충성으로 ‘반지’를,
착한 목자로 양들을 잘 이끌라는 의미로 ‘지팡이’를 가집니다.(1574 참조)
주교는 성령의 ‘안수’와 축성 ‘기도’로 서품을 주고
그의 대리자들에게 자신들의 직책과 직무를 수여합니다.(1573 참조)
사제는 ‘성반과 성작’을 받으며 제사의 직무를 부여받습니다.
직무를 소홀히 한 사제는
주교의 얼굴을 보기가 두려울 것이고
, 또 직무를 소홀히 한 주교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감히 볼 용기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품성사는 직책을 받는 성사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인 의미로는 “직무를 위한 성사”(1576)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직자들은 항상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되새기며
먼저 완전한 존재가 될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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