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ON]The mother of God.XV c., P. Korin, Moscow
1938년 4월 17일에 부활 축일을 맞이하여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는
새로운 세 명의 성인을 시성하는 장엄한 예식이 거행되었다.
이 새로 시성된 성인들은
예수회의 성 안드레아 보볼라 순교자와 프란치스코회의
성 살바도르 및 성 요한 레오나르디이다.
*성 안드레아 보볼라 축일:5월16일.게시판1766번.
*성 살바도르 축일:3월18일. 게시판1050번.1667번.
*성 요한 레오나르디 축일:10월9일.게시판1413번.
요한은 1543년 이탈리아의
디에치모 촌에 사는 레오나르디 집안의 7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신심이 두터운 부모는 소년을 근처에 있는
어느 신부에게 위촉해 교리와 기타 교육을 받도록 했는데,
그때문인지 일찍이 신부가 되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 온순한 성격인 그는
아버지의 의향대로 그런 소원을 체념하고 루가 읍에 나가 어떤 약제사의 조수로서 7, 8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었다.
그러는 한편 도미니코회 신부의 지도 밑에 조직된
그 마을의 가톨릭 청년회에 가입해 독실하고 경건한 행동과
그 덕행으로 일반 회원의 모범이 되었다.
그의 나이 20이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되자,
아직도 신부가 되려는 뜻을 버리지 않은 요한은
고해 신부와 상의한 끝에 그것이 성소임을 깨닫고 처음에는
요한 콜룸비니가 세운 수도회에 들어가 성직에 대한 준비에 착수했다.
연소자들 사이에 끼여 라틴어를 배우고 다음은 철학, 신학을 배워 비로소 신품을 받아
그가 동경하던 성직을 손에 잡은 것은 그의 나이 30이 된 때였다.
그의 최초의 부임지는 역시 루가 마을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성무를 잘 이행했으며 기회 있는 대로 병원이나 형무소를 방문해
병자를 위로하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며,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고해 성사를 주었다.
그 외에 어린 소년, 소녀들의 순박한 마음속에 진리의 씨를 뿌리기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또 그는 예전에 그 일원이었던 가톨릭 청년회를 적극 협조하며,
그 회를 베풀게 하며 교리를 연구케 하여, 흔들리기 쉬운 젊은 마음속에 진리와
은총의 빛이 깃들게 하고,
그들을 위험한 유혹에서 보호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요한은 사제들의 성무 이행에 대한 열성을 분기시키도록 성직자의 신심회를 조직했는데,
이는 1574년 성 필립보 네리 신부의 원조로 창립된 하느님의 성모 성직자회의 선구요,
모체가 되었던 것이다.
이 수도회는 요한 티오니와 제오르지오 아리조 두 신부가
요한 레오나르디와 뜻을 합해 마리아 데 라 로사 성당 근처에 집 한 채를 빌려 동거하고,
그곳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요한은 다만 종이에다 순명이라는
두 자만을 크게 써서 주었다 한다.
즉 그는 장상을 하느님의 대리자로 인정하고 순명하는 것만이
수도 생활의 근본 정신이라 믿었다.
물론 이 회의 앞길도 평탄하지 않았다. 시기도 있고 반대도 있었으나,
요한은 이 모든 것을 잘 감수 인내했다.
거기에 하느님의 도우심이 항상 그회를 따라다녔으며,
때로는 참으로 신기한 주님의 섭리가 뚜렷이 나타날 때도 있었다.
요한이 창립한 이 회의 인가는 1593년에 이르러 나왔다. 장구한 시일을 두고
대망하던 그 인가를 손에 쥐었을 때 그의 기쁨과 감사는 어떠했으랴!
회의 총장으로서 가끔 로마에 상경하게 된 그는,
교회로부터 각 수도회의 개혁에 관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지방을 순시하도록 명령받았다.
포교성성의 설치며, 로마에서의 병원, 학교 등의 개선은
그의 활동에 의한 힘이 컸던 것이다. 이같이 교회와 사회를 위한 분주한 몸이지만,
그는 결코 사제로서의 행할 본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여전히 고해성사를 주며 모든 사업에 주님의 풍성한 은총이 내리게 하기 위해
끊임없는 극기의 생활을 했다.
요한은 1609년 10월 9일, 66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영면했다.
교회의 유명한 역사가 바로니오 추기경은 "요한 레오나르디는 필립보 네리에 비해도
손색없는 훌륭한 성인"이라고 격찬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5694A5D93BE2609)
[이콘] 세 천사를 대접하는 아브라함.16세기 중반. 148.9x113.5cm.러시아박물관
성자는 잔의 한가운데에 있다.
성자는 두 손가락으로 강생을 통한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희생양이 되시는
당신의 사명을 암시하고 계시며,
왼쪽의 성부는 축복하시는 손짓으로 성자를 격려하고 계신다.
그 반대편의 성령은 식탁 아래의 열린 사각형을 가리키며,
이 거룩한 희생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 사각형은 동서남북의 모든 창조된 세상을 상징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집으로 가는 좁은 길, 즉 고통의 길을 나타내고 있다.
★삼위일체는 모든 종교적 체험.모든 신학. 모든 사회적 행위의 원천이다.
우리가 존재의 충만함,
모든 현존하는 것의 목적과 그 의미를 탐구할 때 발전하게 되는 것은 바로 하느님 즉 삼위일체이다.
그자체의 충만함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안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에로 들어가는 것이며,피조물인 인간의 신화를 선취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신적인 생명,삼위일체의 지고한 생명에로 참여하는 것이고,
베드로 성인의 말처럼 "신적인 본성에 참여하는자"가 되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삼위일체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는 시간에 있어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다.
성자는 니케아 신경에 따르면 온 세계 이전에 성부로 부터 낳음을 받았다.
더군다나 성령은 성부로 부터 발출했다.
삼위일체의 이콘이 표현하고자 추구하는 것이 이 영원성이다.
성서의 삼위일체의 하느님과 우리와의 첫 만남은 창세1,26의 창조설화에서 발견되는데,
성부께서는 "우리자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신다.
두번째 만남은 마므레의 떡갈나무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세명의 천상 방문객들이 나타나
아들 이사악의 탄생에 관해 소식을 전해 준 18장에서 나타난다.
동방교회에 있어서 이 삼위일체의 첫 현시는 오순절, 바로 그날에 충만하게 드러날 약속의 시작이다.
옛계약은 새 계약의 예표이며, 그 새 계약은 삼위일체 교리에서 완성 된다.
만약, 주의 세례 축일에,거룩한 삼위일체의 현시를 외적인 감각만으로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세례자 요한은 성부의 목소리를 듣고, 성자를 보고, 비둘기 형상으로 강림하는 성령을 보았을 것이다.
오늘 하느님의 아들에 의해 회복된 성령의 은총이 인간 전 존재에 주어진 빛으로서
인간을 신화(deification)시키고 있다.
-이콘.신비의 미.장긍선신부-
*구약성서의 삼위일체(러시아의 안드레이 루블레프의 1425년 작):게시판1224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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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crifice of Abraham-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35,Oil on canvas, 193 x 133 cm.The Hermitage, St. Petersburg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7434E5D93C0560C)
10월 9일
성조 아브라함
St. Abraham
Sant’ Abramo Patriarca d’Israele
Abramo = grande padre, dall’ebraico
Ur dei Caldei - Canaan, XIX secolo a.C.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79F4E5D93C0760C)
아브라함은 신앙의 성조이며,
이사악의 아버지이며, 아브라함에게서 야훼 신앙이 도래되었다.
아브라함의 아내는 사라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02CF445D93C0910B)
창세 22,1-13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셨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하고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2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분부하셨다.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거기에서 내가 일러 주는 산에 올라 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아들 이사악은 데리고
제물을 사를 장작을 쪼개 가지고 하느님께서 일러 주신 곳으로 서둘러 떠났다.
4 길을 떠난 지 사흘만에 아브라함은 그 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5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있거라.
나는 이 아이를 데리고 저리로 가서 예배드리고 오겠다." 하고 나서
6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씨와 칼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둘이서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7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을 불렀다. "아버지!" "얘야! 내가 듣고 있다."
"아버지! 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8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나,
9 하느님께서 이러 주신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은 다음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더미위에 올려 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에 칼을 잡고 아들을 막 찌르려고 할 때,
11 야훼의 천사가 하늘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어서 말씀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야훼의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12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13 아브라함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보니 뿔이 덤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수양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아브라함은 곧 가서 그 수양을 잡아 아들 대신 번제물로 드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2769485D93C0C00B)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5694A5D93BE2609)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C4A4E5D93C0E20D)
성녀 사라
St.Sara
Santa Sara Moglie di Abramo
Sara = principessa, signora, dall’ebraico
사라는 구약의 인물로서 아브라함의 아내이며, 이사악의 어머니이다.
창세 17장, 18장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축일은 따로 없고, 아브라함의 축일인 10월 9일에 함께 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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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구약 성서적인 성 삼위일체. 팔레히(Palech)화파.31.5 x 27cm. 18세기
세 명의 천사, 왼쪽에는 상징적인 성부(聖父), 중앙에는 그리스도,
오른쪽에는 성령(聖靈)이 책상보가 깔린 책상 주위에 모여 있다.
배경에는 암산(巖山)과 집의 중간에 위치한 숲 속에 떡갈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세 명의 천사들은 아브라함, 사라, 그의 아내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는다.
아브라함 집에서의 식사는 미래에 행해질 그리스도의 인간화와 인류를 위한
그의 희생을 천사들이 미리 예상하는 것이다.
희랍 정교 지역에서는 삼위일체의 묘사를 모세 1책 18장에 의거하는데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된다.:
"마므레(Mamre) 숲에 사는 아브라함이 오두막집 문앞에 앉아 있을 때
하느님이 재현하셨다...그가 위를 쳐다보자 세 명의 천사들이 그의 앞에 서있었다..."
-유럽 聖畵(ICON)集에서-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home.catholic.or.kr%2Fgnbbs%2Fncbbs.dll%2Fchinchang%2F-%2Fb%2F1411%2F1009Abraham-LIPPI%2C%2520Filippino%25201502%2520Florence.jpg)
Abraham - LIPPI, Filippino. 1502.Fresco.Strozzi Chapel,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성서의 풍속]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은 어디였을까?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의 고향을
갈대아의 우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창세 11,28 참조).
그러다가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길을 떠난다.
당시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위험한 행위였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자리잡고 살았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의 우르는 어떤 곳이었을까?
일부학자들은 갈대아의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텔 엘 무카이야르’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갈대아의 우르는 현재 이라크 영토에 속한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위치한 수메르와
바빌론의 대도시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따라서 우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메르를 먼저 잘 알아야 한다.
수메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으로 형성된 지방으로 B.C 5000년께부터
농경민이 정착하기 시작한 곳이었다.
수메르 사람들은 두 강의 중, 상류 지역 또는 엘람 지방에서 이주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지역은 B.C 3000년께 세계 최고의 문명을 창조했다.
특히 이 지방에는 늪과 연못이 많고 두 강에서 일어나는 홍수나 페르시아만의 높은 조수로 인하여
일찍부터 간척, 배수, 관개 등의 토목공사가 발달했다.
그러나 수메르인의 민족이나 언어, 원주지에 관해서는 분명하지 않은 점이 많다.
그리고 이 무렵의 정치에는 대략적으로 촌락 공동체 시대의 평등한 원리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일반 시민의 성년 남자로 구성되는 민회(民會)와 씨족장들의 장로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쟁과 같은 도시의 사활에 직결되는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도시의 전권을 위임받는 왕이 선출되어 나라를 통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초기 왕조시대에는 500년간 각 도시국가가 난립하여 서로 싸움을 벌였다.
이때 각 도시는 신의 소유라고 생각되어 성벽으로 둘러싸인 신전을 중심으로
한 중심 지역과 주위의 농경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도시에서는 정치, 경제, 군사 생활 등이 모두 신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당시의 나라는 신전공동체 또는 신전국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초기 왕조시대에 우루크, 우르, 키시, 니푸르 등의 유력한 도시국가가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패권을 다투었다.
수메르 문화는 세계 최고의 문명으로서 오리엔트 역사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들은 그림문자로부터 독특한 설형문자를 발명하여 고대 오리엔트에서 널리 사용했다.
또한 12진법과 태음력을 사용하였고, ’수메르 법’이라는 법전도 만들어 높은
문화적 발전을 과시했다.
그런데 우르는 일찍부터 지형 특성상 무역을 통해 크게 번영하였다.
수메르에서는 점토 이외의 원료가 산출되지 않아 석재나 광석,
귀금속은 모두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동쪽은 인더스 유역,
서쪽은 아나톨리아, 시리아, 이집트 등과 원격지 무역을 시도했다.
또한 그 무역을 통하여 수메르 문명은 오리엔트 각지로 전파되었다.
그런데 수메르는 역사의 부침을 거듭하다가 한때 다시 번영하여 우르 제3왕조를 일으켰으나
결국 동방 엘람인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메르는 셈족에게 동화되었고, 이후 수메르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지방에 해당하는데
남부 유프라테스강 가까운 곳에 있던 수메르의 발달된 도시국가였다.
따라서 우르가 오늘날로 치면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되고 세련된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도시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그런 도시를 떠나 미지의 척박한 땅으로 떠난 아브라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성조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 평화신문에서 www.pbc.co.kr-
The Meeting of Abraham and Melchizedek-RUBENS, Pieter Pauwel
1625,Oil on wood,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히브7,1-3.15-17
1 이 멜기세덱은 살렘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여러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 오는 아브라함을 맞아 축복해 주었고
2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고 그 다음 살렘왕이라는 칭호는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서 영원히 사제직을 맡아 보는 분입니다.
15 멜기세덱과 같이 다른 계통의 사제가 나타나셨으니 일은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16 그분이 사제가 되신 것은 인간의 율법의 규정을 따라 되신 것이 아니고
불멸의 생명의 힘을 따라 되신 것입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
"너는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09,1.2.3.4(◎ 4ㄴ)
◎ 너는 멜기세덱의 품위를 따라 영원한 사제이니라.
○ 하느님께서 내 주님께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기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하셨도다. ◎
○ 하느님께서 시온으로부터 권능의 홀을 뻗치시며 말씀하시리라.
“네 원수들 가운데서 왕권을 행사하여라. ◎
○ 거룩한 빛 속에 네가 나던 날, 주권이 너에게 있었으니,
샛별이 돋기 전에 이슬처럼 내가 너를 낳았노라.” ◎
○ 하느님께서 이미 맹세하셨으니, 다시는 뉘우치지 않으시리라.
“너는 멜기세덱의 품위를 따라 영원한 사제이니라.” ◎
창세14,13-20
13 한 사람이 도망쳐 나와서 히브리인 아브람에게 이 일을 알렸다.
아브람은 그 때 아모리인 마므레의 상수리나무가 무성한 곳에 살고 있었다.
마므레는 에스골과 아넬과 동기간으로서, 이들은 아브람과 계약을 맺은 사이였다.
14 아브람은 자기 골육이 끌려 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러 낸
사병 삼백 십 팔 명을 소집하여
단까지 쫓아 갔다.
15 아브람과 그의 부하들은 여러 패로 나뉘어 밤을 틈타 그들을 기습,
다마스커스 북쪽에 있는 호바까지 추격해 가면서
16 모든 것을 되찾았다.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부녀자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을 되찾아 냈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을 맺은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 오는데
소돔 왕이 왕의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사웨 골짜기까지 나와 그를 맞았다.
18 살렘 왕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였다.
19 그는 아브람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내리소서.
20 그대의 원수를 그대의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어라."
아브람은 자기가 가진 것 전부에서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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