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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 /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 성조 아브라함

Berardus 2021. 10. 8. 18:02


 

 

10월 9일

파리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


San Dionigi e compagni Vescovo e martiri

ST.DENIS (Denys, Dionysius)

프랑스의 수호 성인.258년경 순교

 

 

프랑스의 수호 성인인 이 순교자는 扁?이탈리아 태생 주교였으나,

교황 파비안께서 250년에 선교사로서 골 지방으로 파견하셨다.

이때 6명의 주교들이 프랑스로 갔다고 한다.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에 따르면,

디오니시오는 3세기 중엽 로마에서 프랑스로 왔다고 한다.  

 

파리의 초대 주교가 되었고 그가 불과 몇 년을 선교하다가

자신의 사제인 성 루스띠꼬와 부제 성 엘레우테리오와 함께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곳에서 258년에 있었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에 두 동료 사제들과 함께

 파리 근교에서 참수되었다

참수된 곳을 그 당시 사람들이 몽마르트르 곧 "순교자의 언덕"으로 불렀다.

이곳이 오늘의 몽마르뜨르 거리이다.

 

그들의 유해는 세느 강에 던져졌으나 곧 찾아냈으며,

 파리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그의 머리를 가져갔다고 한다.

6세기 초 성녀 제노베파는 디오니시오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건축했다고한다.

이곳이 저 유명한 파리에 있는 성 디오니시오 대수도원 성당

(쌩 드니의 베네딕토 수도원) 이 되었다.

 

 

우리는 그분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지만

그에 대한 공경이 수세기 동안 교회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온 성인을 맞이했다.

우리는 이 성인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새겨 놓은 깊은 인상은

뛰어나게 성스러운 그의 생활에서 연유한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모든 경우에 근본적인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위대한 인물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의 생애를 바쳤으며

교회는 결코 그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지니신 영원한 관심에 대한

인간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순교는 꿋꿋한 신앙에 의한 죽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순수한 형태로 드러내는 한, 교회 본질의 일부이다.

한편 죽음으로도 꺾이지 않는 신앙은

모든 인간사의 반대 감정이 병존하는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교회의 성덕은 순교를 통하여 순전히 주관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그것이 필요로 하는 눈에 보이는 표현을 얻는 것이다.

2세기라는 초창기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이나 그리스도교 윤리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마르티르(Martyr)라 하여 존경했다.

이 증거자란 성서에 있는 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충실한 증거자"(묵시1,5; 3,14)라 한다.

-(칼 라너, Theological Dictionary)-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시편 118편 주해」에서

(Semo 20,47-50: CSEL 62,467-469)

 

충실하고도 굳건한 증인이 되십시오

 

여러 종류의 박해가 있는 것처럼 여러 형태의 순교가 있습니다.

즉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매일 매일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당신이 정욕의 영으로 유혹받을 때,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심판이 두려워 영혼과 육신의 정결을 간직한다면

그리스도를 위한 순교자, 그분의 증인이 됩니다.

당신이 탐욕의 영으로 미천한 사람의 소유물을 차지하고 싶거나 무방비한

과부의 권리를 침해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

하느님의 계명을 기억하여 어려운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보다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판단 내린다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이사야서의 다음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증인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억눌린 자를 풀어 주고 고아의 인권을 찾아 주며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주께서 말씀하신다.”

당신이 또 교만의 영으로 유혹을 받을 때 불쌍한 이와 가난한 이를 보고서

그들을 가엾이 여겨, 교만보다 겸손을 더 높이 평가한다면

그리스도를 위한 순교자, 그분의 증인이 됩니다. 그때 당신은 단순히 말로써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해 준 것 입니다.

 

복음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증언해 주는” 사람보다 더 믿음직한 증인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실행치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셈입니다.

그는 말로써 고백한다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부인합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 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때” 주님은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증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특히 행동의 증거로써

 증언해주는 사람입니다.

 

매일 매일 은밀한 데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순교자, 그분의 증인이 되고

 주 예수를 고백하는 이들 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도는 이러한 순교와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한 증거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자랑이고 우리 양심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반대 경우의 사람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외적으로는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내적으로는 부인했습니다.

성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영이라고 다 믿지 마십시오. 그

들의 열매를 보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부로부터 오는 박해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내부의 박해에서도 충실하고 굳건한 증인 곧 순교자가 되십시오.

내부의 박해에서도 권력을 쥔 무서운 임금이나 통치자나 판관들이 있습니다.

주께서 받으신 유혹에서 그 한 가지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어딘가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사람이여, 죄가 당신 안에서 군림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왕이 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죄와 악행이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에 따른 통치자도 그만큼 많아집니다.

우리는 이 통치자들 앞에 끌려 나아가 그들 앞에 서 있습니다.

이 통치자들은 많은 이들의 영혼 안에서 자기네의 재판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이 통치자들을 즉시 굴복시키고 영혼의 옥좌로부터 쓰러뜨립니다.

실상 그리스도께서 이미 재판석을 세우신 영혼 안에 어떻게 마귀의 재판석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파리의 수호성녀 제노베파 축일:1월3일.게시판946번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 축일:11월17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축일:12월7일.게시판790번

*아레오파고의 성 디오니시오 축일:10월3일.게시판1402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몽마르뜨 예수 성심 대성당 (Sacre Coeur de Montmarte)

몽 마르뜨르는 프랑스 파리 북동쪽에 있는 표고 130m의 작은 언덕으로

 순교자의 언덕 (Mons Martyrum) 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파리의 초대 주교였던 성인 디오니시오(St-Denis-쌩드니)가 이 산에서 순교하여

 「순교자의 산」이라는 뜻으로

몽 데 마르뜨르」(Mont des Martyrs)로 불려 오다가 후에

「몽 마르뜨르」현재의 이름으로 통용되게 되었다고 한다.

 

몽마르뜨르 언덕의 정상에 위엄있게 서 있는 예수성심 성당은

인상적인 조각, 그림, 모자이크 장식 등이 참으로 정교하며, 천정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1870년 독일과의 교전으로 시련을 격게 된 프랑스 국민들이 거국적으로 성금을 모아

 1910년에 건립하였으며

거대한 백악(百堊)의 아름다운 예수 성심 대 성당이 정상에 세워져 파리의 명소가 되었다.

 

 

전주의 몽마르트 순교자 산

한국의 전주교구 중바위 치명자산 성지.

동서고금에 유래가 없는 동정부부 순교자.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

 


 

10월 9일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St. Joannes Leonardi, C

San Giovanni Leonardi Sacerdote

Diecimo, Lucca, 1541 - Roma, 9 ottobre 1609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의 루가 태생인 그는 처음에는 약제사가 되었지만

 요한 콜롬비니가 세운 수도회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설교하는 일을 시작하여, 특히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교 교리를 가르쳤다.

병원과 감옥의 사목활동에 힘을 기울였던 그는 많은 후원자와 협력자를 얻게 되었다.

 

이때 열리고 있던 트렌트 공의회에선 프로테스탄트가 당당하게 활동하였는데,

요한과 그 후원자들은 새로운 교구 사제회 구성을 계획하여 이에 대항하였다.

그리하여 교황 그레고리오 13 세로부터 승인을 받고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성 필립보 네리의 도움이 매우 컸다.

 

이 수도회의 이름은 "천주의 모친 성직수도회"이며,이탈리아에서

 프로테스탄트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신앙 전파를 위하여 최초의 사제회를 설립하였으며, 이 사제회를 교황들이 확충시켜

 포교성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는 마땅히 이 기구의 창설자로서 간주되고 있다.

사랑과 슬기로써 다른 여러 수도회의 기율도 바로잡았다.

1609년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다만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왜 내가 그일을 해야 하는 가?" "그것은 내게 무슨 이유인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사람들은 이러한 자기 자신의 있음에 대한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

요한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고유한 방법으로 이러한 문제에 답했다.

즉 그는 한 인간으로서 사제가 되기로한 것이다.

서품 후에 그는 열심히 사목 활동을 했으며 병원과 교도소 사목에 열성적이었다.

그의 헌신적인 활동과 표양으로 몇 명의 젊은 평신도들이 그를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도 후에 사제가 되었다.

 

요한은 종교 개혁과 트렌트 공의회 이후의 쇄신 시대에 살았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교구 사제들의 새로운 모임을 계획했다.

결국 승인은 받았으나 이 계획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심한 정치적 반발을 일으켜,

그는 고향인 이탈리아의 루카에서 추방되어 남은 생애를 타향에서 보냈다.

그는 필립보 네리 성인의 격려와 도움을 받았는데

필립보 네리 성인은 그에게 자기의 숙소를, 그의 고양이까지 덧붙여서 주었다.

 

그는 1574년 천주의 모친 성직 수도회를 세웠으며,

1579년 교리 연구협회를 만들어

’그리스도교 교리의 개요’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것은 19세기까지도 사용되었다.

 

레오나르도 신부와 동료 사제들은 이탈리아의 이익을 위해 큰 힘이 되었으며

그 회는 1595년에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인준했다.

그는 전염병 환자가 내민 손을 잡아 주다가 전염되어 68세에 세상을 떠났다.

창랍자의 사려 깊은 방침에 의해 천주의 성모 성직자회는 15개 이상의 본당은 절대로 맡지 않고

오늘날까지 대단히 작은 단체로 머물러 있다.

 


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만일 ’크리스토퍼노트’라는 팜플렛을 보아도 많은 일이 있음을 알 것이다.

모든 성인의 생애를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느님과 한 사람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서 일생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바라거나 상상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뛰어 넘는다.

우리 각자는 요한 레오나르도와 마찬가지로 온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성취시켜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하나밖에 없는 존재이며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형제 자매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사용할 재능을 각자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내 어린 양떼들아, 조금도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하늘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시기로 하셨다.

너희는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해어지지 않는 돈지갑을 만들고 축나지 않는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들거나 좀먹는 일이 없다." (루가 12,32-33)

 

 

성 필립보 네리 축일:5월26일. 게시판1182번,178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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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레오나르도 사제가 교황 바울로 5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Epist. Pro universali totius Ecclesiae reformatione:

 in archivo Ordinis Clericorum Regularium Matris Dei)

 

사람아, 주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보여 주겠다.

 

사람들의 습성을 개혁하고자 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영광을 찾으면서

힘들어도 보람이 있는 이 개혁의 성취를 위해서 만물의 원천이신 분의 도움을 기대하고

 또 청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개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앞에다 등경 위에 놓은 등불처럼 자기 자신을

 온갖 덕행의 거울로서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 생활의 고결성과 덕행의 광휘로써 하느님의 집에 사는

모든 이에게 빛을 비추어 주어,

강요함으로써 보다는 온유로써 개혁에로 이끌어 줄것입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령에 따라, 머리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몸에서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그린?한다면 주님 가족 전체의 견고한 질서가 손상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분별 있는 의사들처럼 교회를 괴롭히는 여러 급성 질병들을 완벽히 진단하여

각 질병에 대해 적절한 치료제를 투입하도록 열의를 다해야 합니다.

 

전체로서의 교회가 요구하는 치료제들에 대해 살펴본다면

그 개혁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지도자에게건 어린이들에게건, 관계없이 단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이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거기에서 걔혁을 추진한다면 수하 사람들에게까지 그 개혁이 흘러내려갈 것입니다.

 

따라서 추기경, 총대주교, 대주교, 주교 그리고 본당 사제들,

한마디로 영혼의 직접적인 양육을 책임 맡는 모든 이들을 택하는 데 있어,

즉 주님 양떼의 지도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임명하는 데 있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지위가 가장 높은 이들로부터 가장 낮은 이들에게,

말하자면 지도자들로부터 어린이들에게까지 내려가 보도록 합시다.

교회 관습의 개혁은 그들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어린이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에게 유아 때부터 진정한 그리스도교 신앙과

건전한 생활자세를 교육시키는 데 필요한 것을 한 가지라도 그냥 내버려두는 일은 옳지 못합니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선, 다른 누구도 아닌,

착하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의 수중에 어린이들을 맡겨

 그리스도교 교리를 가르치는 교육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교황 성하, 이 점들이 바로 현재의 중대한 위기에 처하여 주님이 저에게 제시해 주신 것들입니다.

이 방법들이 처음 언뜻 보기에는 수행하기 지극히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위기의 중대성에 비할 때 지극히 쉬운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웅대한 변화는 웅대한 수단으로써가 아니면 올 수 없으며,

위대한 일은 위대한 사람들이 하여야 합니다.

 

[ICON]The mother of God.XV c., P. Korin, Moscow

 

1938년 4월 17일에 부활 축일을 맞이하여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는

 새로운 세 명의 성인을 시성하는 장엄한 예식이 거행되었다.

이 새로 시성된 성인들은

예수회의 성 안드레아 보볼라 순교자와 프란치스코회의

성 살바도르 및 성 요한 레오나르디이다.

 

*성 안드레아 보볼라 축일:5월16일.게시판1766번.
*성 살바도르 축일:3월18일. 게시판1050번.1667번.
*성 요한 레오나르디 축일:10월9일.게시판1413번.

 

요한은 1543년 이탈리아의

 디에치모 촌에 사는 레오나르디 집안의 7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신심이 두터운 부모는 소년을 근처에 있는

 어느 신부에게 위촉해 교리와 기타 교육을 받도록 했는데,

그때문인지 일찍이 신부가 되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 온순한 성격인 그는

아버지의 의향대로 그런 소원을 체념하고 루가 읍에 나가 어떤 약제사의 조수로서 7, 8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었다.

그러는 한편 도미니코회 신부의 지도 밑에 조직된

그 마을의 가톨릭 청년회에 가입해 독실하고 경건한 행동과

그 덕행으로 일반 회원의 모범이 되었다.

 

그의 나이 20이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되자,

 아직도 신부가 되려는 뜻을 버리지 않은 요한은

고해 신부와 상의한 끝에 그것이 성소임을 깨닫고 처음에는

 요한 콜룸비니가 세운 수도회에 들어가 성직에 대한 준비에 착수했다.

연소자들 사이에 끼여 라틴어를 배우고 다음은 철학, 신학을 배워 비로소 신품을 받아

 그가 동경하던 성직을 손에 잡은 것은 그의 나이 30이 된 때였다.

 

그의 최초의 부임지는 역시 루가 마을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성무를 잘 이행했으며 기회 있는 대로 병원이나 형무소를 방문해

 병자를 위로하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며,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고해 성사를 주었다.

그 외에 어린 소년, 소녀들의 순박한 마음속에 진리의 씨를 뿌리기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또 그는 예전에 그 일원이었던 가톨릭 청년회를 적극 협조하며,

그 회를 베풀게 하며 교리를 연구케 하여, 흔들리기 쉬운 젊은 마음속에 진리와

 은총의 빛이 깃들게 하고,

그들을 위험한 유혹에서 보호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요한은 사제들의 성무 이행에 대한 열성을 분기시키도록 성직자의 신심회를 조직했는데,

이는 1574년 성 필립보 네리 신부의 원조로 창립된 하느님의 성모 성직자회의 선구요,

 모체가 되었던 것이다.

 

이 수도회는 요한 티오니와 제오르지오 아리조 두 신부가

 요한 레오나르디와 뜻을 합해 마리아 데 라 로사 성당 근처에 집 한 채를 빌려 동거하고,

그곳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요한은 다만 종이에다 순명이라는

 두 자만을 크게 써서 주었다 한다.

즉 그는 장상을 하느님의 대리자로 인정하고 순명하는 것만이

 수도 생활의 근본 정신이라 믿었다.

 

물론 이 회의 앞길도 평탄하지 않았다. 시기도 있고 반대도 있었으나,

요한은 이 모든 것을 잘 감수 인내했다.

거기에 하느님의 도우심이 항상 그회를 따라다녔으며,

 때로는 참으로 신기한 주님의 섭리가 뚜렷이 나타날 때도 있었다.

 

요한이 창립한 이 회의 인가는 1593년에 이르러 나왔다. 장구한 시일을 두고

 대망하던 그 인가를 손에 쥐었을 때 그의 기쁨과 감사는 어떠했으랴!

회의 총장으로서 가끔 로마에 상경하게 된 그는,

교회로부터 각 수도회의 개혁에 관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지방을 순시하도록 명령받았다.

포교성성의 설치며, 로마에서의 병원, 학교 등의 개선은

 그의 활동에 의한 힘이 컸던 것이다. 이같이 교회와 사회를 위한 분주한 몸이지만,

그는 결코 사제로서의 행할 본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여전히 고해성사를 주며 모든 사업에 주님의 풍성한 은총이 내리게 하기 위해

끊임없는 극기의 생활을 했다.

 

요한은 1609년 10월 9일, 66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영면했다.

교회의 유명한 역사가 바로니오 추기경은 "요한 레오나르디는 필립보 네리에 비해도

 손색없는 훌륭한 성인"이라고 격찬했다.


 


[이콘] 세 천사를 대접하는 아브라함.16세기 중반. 148.9x113.5cm.러시아박물관

 

성자는 잔의 한가운데에 있다.

성자는 두 손가락으로 강생을 통한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희생양이 되시는

당신의 사명을 암시하고 계시며,

왼쪽의 성부는 축복하시는 손짓으로 성자를 격려하고 계신다.

그 반대편의 성령은 식탁 아래의 열린 사각형을 가리키며,

이 거룩한 희생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 사각형은 동서남북의 모든 창조된 세상을 상징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집으로 가는 좁은 길, 즉 고통의 길을 나타내고 있다.

 

★삼위일체는 모든 종교적 체험.모든 신학. 모든 사회적 행위의 원천이다.

우리가 존재의 충만함,

모든 현존하는 것의 목적과 그 의미를 탐구할 때 발전하게 되는 것은 바로 하느님 즉 삼위일체이다.

그자체의 충만함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안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에로 들어가는 것이며,피조물인 인간의 신화를 선취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신적인 생명,삼위일체의 지고한 생명에로 참여하는 것이고,

베드로 성인의 말처럼 "신적인 본성에 참여하는자"가 되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삼위일체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는 시간에 있어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다.

성자는 니케아 신경에 따르면 온 세계 이전에 성부로 부터 낳음을 받았다.

더군다나 성령은 성부로 부터 발출했다.

삼위일체의 이콘이 표현하고자 추구하는 것이 이 영원성이다.

 

성서의 삼위일체의 하느님과 우리와의 첫 만남은 창세1,26의 창조설화에서 발견되는데,

성부께서는 "우리자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신다.

두번째 만남은 마므레의 떡갈나무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세명의 천상 방문객들이 나타나

아들 이사악의 탄생에 관해 소식을 전해 준 18장에서 나타난다.

 

동방교회에 있어서 이 삼위일체의 첫 현시는 오순절, 바로 그날에 충만하게 드러날 약속의 시작이다.

옛계약은 새 계약의 예표이며, 그 새 계약은 삼위일체 교리에서 완성 된다.

만약, 주의 세례 축일에,거룩한 삼위일체의 현시를 외적인 감각만으로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세례자 요한은 성부의 목소리를 듣고, 성자를 보고, 비둘기 형상으로 강림하는 성령을 보았을 것이다.

오늘 하느님의 아들에 의해 회복된 성령의 은총이 인간 전 존재에 주어진 빛으로서

인간을 신화(deification)시키고 있다.

 

-이콘.신비의 미.장긍선신부-

*구약성서의 삼위일체(러시아의 안드레이 루블레프의 1425년 작):게시판1224번 참고.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The Sacrifice of Abraham-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35,Oil on canvas, 193 x 133 cm.The Hermitage, St. Petersburg


 

10월  9일

성조 아브라함


St. Abraham

Sant’ Abramo Patriarca d’Israele

Abramo = grande padre, dall’ebraico

Ur dei Caldei - Canaan, XIX secolo a.C.



 

아브라함은 신앙의 성조이며,

이사악의 아버지이며, 아브라함에게서 야훼 신앙이 도래되었다.

아브라함의 아내는 사라이다.


  

창세 22,1-13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셨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하고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2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분부하셨다.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거기에서 내가 일러 주는 산에 올라 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아들 이사악은 데리고

제물을 사를 장작을 쪼개 가지고 하느님께서 일러 주신 곳으로 서둘러 떠났다.

4 길을 떠난 지 사흘만에 아브라함은 그 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5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있거라.

나는 이 아이를 데리고 저리로 가서 예배드리고 오겠다." 하고 나서

6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씨와 칼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둘이서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7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을 불렀다. "아버지!" "얘야! 내가 듣고 있다."

"아버지! 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8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나,

9 하느님께서 이러 주신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은 다음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더미위에 올려 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에 칼을 잡고 아들을 막 찌르려고 할 때,

11 야훼의 천사가 하늘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어서 말씀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야훼의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12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13 아브라함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보니 뿔이 덤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수양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아브라함은 곧 가서 그 수양을 잡아 아들 대신 번제물로 드렸다.



 


  

 

성녀 사라


St.Sara

Santa Sara Moglie di Abramo

Sara = principessa, signora, dall’ebraico

 

사라는 구약의 인물로서 아브라함의 아내이며, 이사악의 어머니이다.

창세 17장, 18장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축일은 따로 없고, 아브라함의 축일인 10월 9일에 함께 지낼 수 있다.

 


[이콘]구약 성서적인 성 삼위일체. 팔레히(Palech)화파.31.5 x 27cm. 18세기

 

세 명의 천사, 왼쪽에는 상징적인 성부(聖父), 중앙에는 그리스도,

오른쪽에는 성령(聖靈)이 책상보가 깔린 책상 주위에 모여 있다.

배경에는 암산(巖山)과 집의 중간에 위치한 숲 속에 떡갈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세 명의 천사들은 아브라함, 사라, 그의 아내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는다.

아브라함 집에서의 식사는 미래에 행해질 그리스도의 인간화와 인류를 위한

그의 희생을 천사들이 미리 예상하는 것이다.

 

희랍 정교 지역에서는 삼위일체의 묘사를 모세 1책 18장에 의거하는데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된다.:

"마므레(Mamre) 숲에 사는 아브라함이 오두막집 문앞에 앉아 있을 때

하느님이 재현하셨다...그가 위를 쳐다보자 세 명의 천사들이 그의 앞에 서있었다..."

-유럽 聖畵(ICON)集에서-

 

Abraham - LIPPI, Filippino. 1502.Fresco.Strozzi Chapel,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성서의 풍속]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은 어디였을까?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의 고향을

 갈대아의 우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창세 11,28 참조).

그러다가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길을 떠난다.

당시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위험한 행위였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자리잡고 살았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의 우르는 어떤 곳이었을까?

일부학자들은 갈대아의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텔 엘 무카이야르’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갈대아의 우르는 현재 이라크 영토에 속한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위치한 수메르와

바빌론의 대도시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따라서 우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메르를 먼저 잘 알아야 한다.

수메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으로 형성된 지방으로 B.C 5000년께부터

농경민이 정착하기 시작한 곳이었다.

수메르 사람들은 두 강의 중, 상류 지역 또는 엘람 지방에서 이주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지역은 B.C 3000년께 세계 최고의 문명을 창조했다.

특히 이 지방에는 늪과 연못이 많고 두 강에서 일어나는 홍수나 페르시아만의 높은 조수로 인하여

일찍부터 간척, 배수, 관개 등의 토목공사가 발달했다.

그러나 수메르인의 민족이나 언어, 원주지에 관해서는 분명하지 않은 점이 많다.

그리고 이 무렵의 정치에는 대략적으로 촌락 공동체 시대의 평등한 원리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일반 시민의 성년 남자로 구성되는 민회(民會)와 씨족장들의 장로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쟁과 같은 도시의 사활에 직결되는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도시의 전권을 위임받는 왕이 선출되어 나라를 통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초기 왕조시대에는 500년간 각 도시국가가 난립하여 서로 싸움을 벌였다.

이때 각 도시는 신의 소유라고 생각되어 성벽으로 둘러싸인 신전을 중심으로

한 중심 지역과 주위의 농경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도시에서는 정치, 경제, 군사 생활 등이 모두 신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당시의 나라는 신전공동체 또는 신전국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초기 왕조시대에 우루크, 우르, 키시, 니푸르 등의 유력한 도시국가가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패권을 다투었다.

수메르 문화는 세계 최고의 문명으로서 오리엔트 역사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들은 그림문자로부터 독특한 설형문자를 발명하여 고대 오리엔트에서 널리 사용했다.

또한 12진법과 태음력을 사용하였고, ’수메르 법’이라는 법전도 만들어 높은

 문화적 발전을 과시했다.

 

그런데 우르는 일찍부터 지형 특성상 무역을 통해 크게 번영하였다.

수메르에서는 점토 이외의 원료가 산출되지 않아 석재나 광석,

귀금속은 모두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동쪽은 인더스 유역,

서쪽은 아나톨리아, 시리아, 이집트 등과 원격지 무역을 시도했다.

또한 그 무역을 통하여 수메르 문명은 오리엔트 각지로 전파되었다.

그런데 수메르는 역사의 부침을 거듭하다가 한때 다시 번영하여 우르 제3왕조를 일으켰으나

결국 동방 엘람인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메르는 셈족에게 동화되었고, 이후 수메르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지방에 해당하는데

남부 유프라테스강 가까운 곳에 있던 수메르의 발달된 도시국가였다.

따라서 우르가 오늘날로 치면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되고 세련된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도시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그런 도시를 떠나 미지의 척박한 땅으로 떠난 아브라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성조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 평화신문에서 www.pbc.co.kr-

 

 

The Meeting of Abraham and Melchizedek-RUBENS, Pieter Pauwel

1625,Oil on wood,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히브7,1-3.15-17

1 이 멜기세덱은 살렘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여러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 오는 아브라함을 맞아 축복해 주었고

2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고 그 다음 살렘왕이라는 칭호는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서 영원히 사제직을 맡아 보는 분입니다.

15 멜기세덱과 같이 다른 계통의 사제가 나타나셨으니 일은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16 그분이 사제가 되신 것은 인간의 율법의 규정을 따라 되신 것이 아니고

불멸의 생명의 힘을 따라 되신 것입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

 "너는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09,1.2.3.4(◎ 4ㄴ)

◎ 너는 멜기세덱의 품위를 따라 영원한 사제이니라.

○ 하느님께서 내 주님께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기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하셨도다. ◎

○ 하느님께서 시온으로부터 권능의 홀을 뻗치시며 말씀하시리라.

 “네 원수들 가운데서 왕권을 행사하여라. ◎

○ 거룩한 빛 속에 네가 나던 날, 주권이 너에게 있었으니,

샛별이 돋기 전에 이슬처럼 내가 너를 낳았노라.” ◎

○ 하느님께서 이미 맹세하셨으니, 다시는 뉘우치지 않으시리라.

“너는 멜기세덱의 품위를 따라 영원한 사제이니라.” ◎

 

창세14,13-20

13 한 사람이 도망쳐 나와서 히브리인 아브람에게 이 일을 알렸다.

아브람은 그 때 아모리인 마므레의 상수리나무가 무성한 곳에 살고 있었다.

마므레는 에스골과 아넬과 동기간으로서, 이들은 아브람과 계약을 맺은 사이였다.

14 아브람은 자기 골육이 끌려 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러 낸

 사병 삼백 십 팔 명을 소집하여

단까지 쫓아 갔다.

15 아브람과 그의 부하들은 여러 패로 나뉘어 밤을 틈타 그들을 기습,

다마스커스 북쪽에 있는 호바까지 추격해 가면서

16 모든 것을 되찾았다.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부녀자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을 되찾아 냈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을 맺은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 오는데

소돔 왕이 왕의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사웨 골짜기까지 나와 그를 맞았다.

18 살렘 왕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였다.

19 그는 아브람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내리소서.

20 그대의 원수를 그대의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어라."

아브람은 자기가 가진 것 전부에서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