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베르나르드(베르나데타) 수비루스로 1844년
프랑스의 루르드에서 가난한 물방앗간 주인의 맏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건강한 아이였으나, 7세부터 병으로 쇠약해져 2, 3년후에는 큰병에 걸려
임종 때까지 천식(喘息)의 고질(痼疾)로 인해 고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거기에다가 그의 가정은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그것은 예기치 않던 불행으로 말미암아 극도로 가난해져서,
정든 집을 떠나 보잘 것 없는 초막과 같은 거처에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베르나데타의 몸도 점점 약화될 뿐이었다.
베르나데타의 정신적 번민은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더많았다.
부모와 동생들을 극히 사랑하고 있던 그녀는
맏딸이면서도 병 때문에 가사를 돕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어머니가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외출할 동안 집에서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 주는 정도 였다.
그녀의 가정은 빈궁 중에서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묵묵히 그의 부자유를 감수 인내했다.
이 같은 탄복할 만한 태도는 견고한 신앙과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의 발로이기도 했다.
베르나데타는 13세가 되어도
학교에 가지 못했고 따라서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은 태산 같았으나,
당시 그녀는 양을 지키고 있었으므로 도저히 통학할 여가가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 그녀는 광막하고도 고요한 들에서 많은 기도를 바쳤다. 또한 뜨개질과 바느질도 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면 자기 집에 돌아오던가 아니면 아는 집에 들르던가 했었다.
남과 이야기할 때나 말을 들을 때는 항상 공부하는 마음으로 듣고 말했다.
14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번민하는 듯한 일상에다가
보통보다 작은 소녀로서 민감하나 쾌활한 기질이 있었으며, 다소 발육이 늦은 듯 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때 그리워하던 학교를 처음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유명한 성모 발현이란 일대 사건이 돌발했던 것이다.
이 성스러운 부인의 발현은 베르나데타에게 커다란 위로와 풍부한 은총을 베풀어주었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많은 슬픔과 시련의 원인이기도 했다.
1858년 2월 11일과 7월 16일 사이,
가브 강변의 얕은 굴속에서 그녀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
18차례에 걸쳐 그녀는 매우 젊고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는데, 그 부인이 자신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했다.
이 부인이 나중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로 호칭하게 되는 동정 마리아로 인정받게 되었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학교-최고의 영혼의 학교였다.
그녀의 영혼은 정결하고 죄의 물듦이 없었지만,
이 학교에서 성모의 슬하에서 확고한 신앙과 덕행의 기반을 형성했다.
그가 성모께 듣고 나서 전한 말씀을 사람들이 믿게 된 것은 주로
그녀의 이런 신앙과 덕행의 힘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베르나데타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부인"을 보지 못하고 그 말씀도 듣지 못했으나,
무슨 혼란이나 정신적인 이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발현이 있고 난 다음부터 거짓 환시가 유행병처럼 번졌으나,
교회 당국은 그녀의 체험에 대해 올바른 자세를 견지했다.
몇 년후 그녀는 의심 많은 불신자들로부터 심한 고통을 받았으나
이 모든 것을 영웅적인 용기와 품위로써 물리쳤다.
성모의 발현은 끝났으나 그녀에 대해서의 엄격한 조사는 그후에도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베르나데타는 언제든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정직하게 말했다.
이리하여 결국 성모 발현의 장소는 성지가 되어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매일같이 쇄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인간의 보통 심리로서
특별한 은혜를 받은 베르나데타에게 호기심을 품고 한 번이라도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했다.
겸손한 그녀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이 되었는지 모른다.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자기가 그처럼 평판이 대단하다면 의기 양양하여 교만의 죄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르나데타는 여전히 순박하고 가난하고 겸손한 소녀였다.
그녀는 전과 다름없이 집안 일을 돌보며 양치기일을 했다.
그녀의 양친도 베르나데타와 같이 종종 방문객에게
금품을 받는 때도 있었으나 호의만을 감사하면서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전히 가난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성모님의 은혜로 세상 재물을 모았다는 소문을 듣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베르나데타는 그러던 중 한 가지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 세계를 떠나 수도원에 숨어 고요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곧 어느 수도원의 분원에서 안내직을 맡게되어
그대로 그곳에 머물고자 했으나
하느님께서는 서서히 그녀를 위해 네베르에 있는
애덕회에 입회의 길을 열어주셨던 것이다.
이미 입회를 결심한 베르나데타에게 있어서 한가지 뼈아픈 것은
그리운 성모님을 뵈옵던 루르드의 동굴을 하직해야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참기 어려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혼연히 네베르를 향해 출발했다.
때는 1866년 7월 4일이었다.
수녀원에 도착한 베르나데타는 삼 일째 되는 날
모든 수녀들이 모인 가운데서 성모님의 발현의 내막을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녀는 순명지덕으로 겸손하고도 정직하게 말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지만 그후는 다시 그 이야기 하는 것을 엄금 당했다.
그녀는 도리어 그것을 기뻐했다.
그는 어떤 중대한 이유가 없이는 그 일을 입밖에 내지 않고 다만 마음에 만 새겨두어
종종 성모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드렸다.
수련기 중에 그녀는 중병에 걸렸었다. 모두들 그녀가 나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서둘러 서원을 허락받아 기쁨에 넘쳐 서원식을 다 마치고 나자 기적처럼 다시 완쾌되었다.
그러나 교회 규정상 같은 동료들과 함께 수련기를 마쳐야 했다.
베르나데타가 병중에 취한 태도는 실로 인내의 모범이었다.
그녀는 고요한 수도원에서 병약한 몸으로 일생을 보내 세인이 놀랄만한 대사업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매일의 숨은 희생이나 순명, 극기, 겸손, 인내, 타인대 등의
여러 덕행에 있어서는 출중한 바가 많았다.
이는 하느님 대전에는 하나 하나의 찬란한 보석처럼 보였을 것이고,
쌓이고 쌓인 그의 공덕은 얼마나 많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 후 베르나데타는 여러 번 병상에 누웠다.
그러다 마침내 재기불능이 되어 1879년 4월 16일 루르드에서
성모를 뵌지 21년째 되는 해까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면서 임종을 맞았다.
루르드에서 일어난 수많은 기적은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란 것을 입증해 주었으며,
베르나데타가 운명한 지방인 네베르에서는 그녀의 기도로 생존시와 사후에 많은 기적들이 생겼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그녀의 성스러운 생애를 증명해 주셨다."
St. Bernadette Soubirous
Shown many years after her death, her body uncorrupted.
겸손하고도 가난한 동정녀의 덕은 장례 때부터 이미 빛나는 영예를 획득했으나,
성인품에 오른 다음은 한층 더 찬란한 광채를 발하게 되었다.
자신을 스스로 낮춘 베르나데타는 지금에 와서는 전 세계의 존경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이용당하는 것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가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했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었다.
그는 평범한 시골 소녀였기에,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성모 마리아가
그에게 나타났느냐는 질문을 하곤 했다.
베르나데트는 그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백치처럼 아주 무지하기 때문에 저를 선택하신 것이 아닐까요?
만약 성모님이 저보다 더 무지한 사람을 발견하셨다면 아마도 그 사람을 선택하셨을 거예요.
성모님은 저를 빗자루처럼 이용하신 것 같아요. 빗자루로 마당을 다 쓸면
그 다음에는 빗자루를 어떻게 하나요?
원래 있던 자리, 바로 문 뒤에 갖다 두겠죠.”
우리는 일반적으로 누구에 의해서 ‘이용당한다’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그 말은 ‘속임을 당한다’든지, ‘버림을 받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이용당하는 것은 창조적인 행동을 하는 것과 같다.
선반 위에 놓인 유리잔은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원래 만들어진 목적은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잔은 우리가 그 안에 물이나 포도주를 따라서 나누어 마실 때
비로소 만들어진 의도, 즉 존재의 목적을 실현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사랑으로 가득 채워질 때 하느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인간,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유리잔이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선반 위에 올려져 있는가? 아니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가?
하느님이 나를 원래 만드신 의도대로 쓰시게 하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알렐루야
(히) hallelujah (영) Alleluia
어원적으로 히브리어 ’힐렐’(hillel, 찬미하다)이란 동사의 명령형 ’할렐루’(hallelu)와
하느님이란 말의 야훼 (jahve)의 약자 ’야’(jah)의 합성어 즉 야훼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뜻이다.
구약성서의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편의 시작과 마지막에 많이 인용되었고(시편 111-117),
유태인의 종교 의식에 있어 성가대의 합창에 신자들이 아멘과 알렐루야로 응답하였다.
알렐루야는 그리스도교의 전례로 넘어와 응답으로서,
환호로서 전례문에 삽입되었으며, 후렴으로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