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교리]
성체성사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62~1372항
우리는 변화를 멈추지 않기 위해 ‘기념’한다
십자가 희생 재현하는 성찬례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삼아
감사의 마음으로 기억할 때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
△이스라엘 DUC IN ALTUM 영성 센터의 마리아 막달레나 경당 제대에 있는 성화.
마리아 막달레나가 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스도를 진정한 스승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성찬례는 십자가 희생 제사를 재현하고, 이를 기념하고 감사하는 시간이다.
교리서는 성찬례를 ‘기념’과 ‘현존’,
그리고 ‘감사’의 세 단어로 종합합니다.
우선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
”(콜로 1,18)로 현존하시기에 “성찬례는 무엇보다도
‘감사’를 의미”(1360)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문제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란 것입니다.
한 번에 어른이 되는 아기는 없습니다.
아기는 부모의 사랑을 쉼 없이 되새기며 감사를 되새겨야
이전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이라도 극복하여 부모를 닮은 어른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또한 그리스도를 우리 머리로 내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감사 기도’ 안에서 이 신비를 기억하는
“아남네시스 또는 기념이라고 부르는 기도”(1362)를 바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고 명하시며
성찬례를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억하며,
이 파스카는 현재화”(1364) 하도록 하셨습니다.
파스카는 파라오의 압제로부터 탈출하여
모세와 하나가 되는 세례와 성체성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성찬례를 통해 이를 반복해 기념함으로써
그 탈출을 현재화시키고 지속시킵니다.(1363 참조)
영화 ‘킹콩을 들다’(2009)는 전북 순창고
여자 역도부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선수들은 정인영 감독 아래서 전국체전에 출전해,
5명의 선수가 15개 부문 중
14개의 금메달을 휩쓰는 대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전국체전 1년 뒤, 정인영 선생님은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하게 됩니다
. 역도부 선수들은 스승을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시골 여중에 88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이지봉 선생이 부임합니다.
하지만 그는 역도로 남는 것은 우락부락한 근육과
부상뿐이라며 역도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역도부에 지원자가 하나둘 생깁니다.
지봉은 그들의 진심을 보고 역도를 가르칩니다.
그러던 중 과로로 그의 심장질환은 점점 심각해지기만 합니다.
지봉이 목숨을 걸고 선수들을 가르친 덕에 그들은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휩씁니다.
그들은 도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며 지봉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지도하게 된 것은 지봉의 후배이자 경쟁자이고
지봉에게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던 코치였습니다.
코치는 아이들을 폭력으로 가르치고
지봉의 제자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심하게 폭력을 가했습니다.
지봉은 제자들에게 힘을 주려고 편지를 써서 부치러 가던 중
심근경색으로 길에서 쓰러져 사망합니다.
이때 아이들은 시합 중이었습니다.
지봉의 부고 소식을 듣고는 시합에 집중하지 못하고 슬퍼합니다.
코치는 선배 지봉의 부고 소식에도 아무런 내색 없이
오히려 시합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을 폭력으로 몰아세웁니다.
더는 지봉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자신의 여고 마크를 떼어버린 후,
코치에게 맞아가면서도 매직으로 유니폼에
‘이지봉’ 세 글자를 쓰고 시합에 출전합니다.
그들은 스승의 바람답게 좋은 결과를 내고 장례식장으로 향합니다.
장례식 날 그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스승인 이지봉 선생의 관을
역기처럼 들어 올리며 선생님을 추모하고 자신들의 심장에 담습니다.
이것이 제자가 스승을 기념하는 방식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스승이 죽어도 그 가르침은 계속됩니다.
선생님의 유일한 바람은 제자들이 자신보다 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할 일은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고 기념하여 감사가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스도를 진정한 스승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자마자 ‘라뿌니’,
곧 ‘스승님’이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찬례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현재화)하고,
이를 기념”(1366)하여 그로 인한 감사의 마음으로
모든 게 불만인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그리스도가 되는 시간입니다.
“미사로 거행되는 이 신적 희생 제사에서
피 흘림 없이 제헌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희생 제사는 참으로 속죄의 제사입니다.”(1367)
이렇게 파스카의 기념은 감사의 열매로 교회를
“온전히 속량된 도성”(1372)이 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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