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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고향(故鄕)을 찾아] 대전교구/ 성거산 성지

Berardus 2021. 7. 23. 05:04

대전교구/ 성거산 성지

 

박해시대의 사목 중심지, 순교자들의 본당 소학골

 

△성거산 성지 야외 부활 십자가

 

 

경기도와 충청북도 경계선에 자리 잡고 있는 성거산 성지는

천안시 북면 납안리 46-1번지로 되어 있다.

한국의 성지 중에서 보기 드물게 해발 500m의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성지는 차령산맥 줄기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봄, 가을에는 꽃들과 단풍으로 찾아 온 순례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성거산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이

수행원들과 함께 성환 지역에 머무르면서 잠시 쉬는 동안

오색구름이 맴돌며 신령한 기운이 감도는 모습을 보고

‘거룩할 성(聖)'자에 '거할 거(居)'자로 이름을 지어준 다음

이 산에서 제사를 지낸 데서 유래한다.

또한 태조 이성계와 세종대왕도 온양 온천에 목욕을 하러 올 때마다

이곳 성거산에 들려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곳 성거산 성지 주변은 박해 때

신앙의 선조들과 순교자들이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했던

삶의 터전인 교우촌 7개가 산재되어 있어 선조들의 신앙의 향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860년대부터 1920년 사이에 세워진 교우촌을 보면

서덕골(서들골), 먹방이, 소학골, 사리목, 매일골, 석천리, 도촌 등이 있었으며,

이 교우촌 중 목천 서덕골 교우촌은 뮈텔 주교가 배티 삼박골 교우촌까지

사목 방문을 할 때 거쳐 가는 경로였다.

또한 서덕골 교우촌은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백부

최영렬이 이주해 살던 곳으로, 1839년 기해박해 이후

최양업 신부의 둘째 아우인 최선정 안드레아가 맡겨져 성장한 곳이며

최양업 신부도 종종 드나들었던 곳이다.

 

△성거산 성지 제1 줄무덤

성거산 성지 옆에 위치한 소학골 교우촌 터 입구.

특히 소학골 교우촌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칼레(Calais, 姜) 신부와 페롱(Feron, 權) 신부가 박해를 피해 머물다

중국으로 탈출한 곳이고, 박해가 끝난 뒤에도 뮈텔(Mutel, 閔德孝) 주교,

두세(Doucet, 丁) 신부, 베르모렐(Vermorel, 張) 신부가

거처하거나 순방하던 곳이다.

칼레 신부와 페롱 신부는 병인 박해 때

동료 선교사들이 곳곳에서 체포되자 전교 여행을 중단하고

한실(현 경북 문경군 마성면 성내리) 교우촌에서 숨어 지냈다.

그러다가 포졸들에게 쫒기면서 연풍을 지나 괴산과 진천을 거쳐

배티 삼박골 교우촌에 머무르다가 마지막으로 소학골에 와서

페롱 신부와 함께 잠시 은신하다가 조선을 떠난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또한 소학골 교우촌에는

병인박해시 10명의 순교자가 탄생했는데,

5명은 공주 감영에서 참수형을 당했고 나머지 5명은

서울 포도청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공주 감영에서 참수당한 최천여 베드로, 최종여 라자로, 배문호 베드로,

고 요셉, 채서방 며느리는 성거산 성지 제1줄무덤에 안치되어 있다.

현재 제1줄무덤에 총 38기, 제2줄무덤에 총 36기의 묘봉이 있는데,

시신(屍身)들이 겹쳐 묻혀 있어 실제 이곳에 안장된

순교자의 수는 훨씬 더 많다고 한다.

1959년 미군의 공군기지가 성거산 정상에 주둔하면서

도로를 개설할 때 도로 상에 있었던 묘봉 수가 총 107기였다고

이장(移葬) 작업에 참여한 6명의 증언이 있었다.

따라서 이곳은 병인박해 때 내포지방에 살다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 때문에 순교를 당한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안식처이다.

 

△성거산 성지 순교자의 길 조각품(순교의 꽃)

 

성거산 성지가 있는 산 아래 건립된 성당.

2011년 5월 봉헌식을 가졌고,

성당 아래층은 수산나 피정의 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느님과 진리를 위해,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생명을 바쳐 증거한 순교자들의 신앙은

오늘날 한국 교회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고 못자리가 되었다.

그동안 오고가는 사람도 없이 벌 · 나비 · 짐승들만이 함께 했던

성거산 성지의 무명 순교자들은 침묵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었다.

 

성지 현황을 보면 제1줄무덤에서 제2줄무덤까지의

거리가 약 530m 정도로, 가는 동안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14처가 설치되어 있고, 넓은 성모광장에는 야외제대와 신자석이 마련되어 있어

야외미사를 봉헌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또한 순례자들이 식사를 하고 쉴 수 있는 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제2줄무덤부터 시작하는 2.1km 거리의 '순교자의 길'에는

순교자와 관련된 많은 조각품과 한국의 103위 성인과

성거산(소학골) 출신 순교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55개의 대형 호롱등이 설치되어 있어 전구하며

조용히 묵상할 수 있다.

2011년 5월 7일에는 성거산 아래 성지 초입에 건립한

성당과 수산나 피정의 집에 대한 봉헌식을 가졌다.

 

△성거산 성지 관리 성당 내부

 

한편 교우촌 중에서

가장 오래된 소학골 교우촌에는 박해 때

교우들이 살던 집터와 태풍에 의해 쓰러진 돌배나무가 남아 있어

오랜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성거산 성지는 깊은 산골에 위치해 소음이 없으며

공기가 맑고 전망이 아름다워 한 번 순례를 온 이들은

꼭 다시 오고 싶어 하는 곳이다.

특히 계절마다 무명 순교자를 상징하는 각종 야생화가 피어

군락을 이루며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2008년 12월 22일 성거산 성지는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라는 명칭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175호로 등록되었다.

 

-[출처 : 대전교구 홈페이지, 내용 일부 수정

(최종수정 2013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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