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영성 이야기]
먼저 가본 이들의 기도가 필요하신 주님
살아낸 시간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생애 첫 선생님이 되어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함께하는
교직원들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손 편지를 적었다.
어찌 그 고마운 마음을 작은 카드에 다 표현할까마는,
평소에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사랑이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한 명 한 명의 교사들에게 손 편지를 적다 보니
모든 선생님의 노고에 이 순간만큼은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하게 된다.
개개인의 성격과 자라 온 환경이 다르고,
근무 연차도 다르지만 서로에게 맞추어 가며
웃음을 잃지 않았던 교사들이 있었기에,
나는 어린이집을 직장이 아닌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긴 시간을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고개 숙여
성호를 긋고 화살기도를 바친다.
오늘도 어린이집의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며
교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성령께서 활동해 주십사 청한 후 문을 연다.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교사들에게 나 또한 웃음으로
오늘의 축복을 빌어 주며 업무를 시작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과는 늘 긴장 속에서 진행된다.
흥에 겨워 뛰어가다 넘어져 멍이 들 때도 있고,
간식과 점심을 맛있게 잘 먹고는 급하게 먹어
체할 때도 있기에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이렇듯 쉽지 않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소명 의식을 가진 교사들은 아이들의 작은 변화와
성장에 뿌듯함을 느끼며, 온몸으로 감동을 표현한다.
그런 교사들을 볼 때면 내 눈에는 교사들이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고,
친동생이며 자식 같아 참 대견할 때가 많다.
그러기에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방패막이가 되어 주어
직장 생활이 외롭지 않도록 힘을 주십사 기도드린다.
몇 주 전 근무 중이던
교사에게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께서 새벽에 뇌출혈로 쓰러져
대학 병원에 입원하여 검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교사와의 인연은 나름 참 깊다.
몇 년 전 본당 해설분과장 직책을 맡아
봉사했을 당시 미사 반주 봉사자였다.
갑자기 반주에 차질이 생길 때마다 미사 시간 전에
급히 전화를 하면 몇 번이고 “예~”하고 달려와 주던,
기억에 남는 반주자였기에 메일로 들어온 이력서를 확인하고는
너무나 반가워 1순위로 채용하였다. 가끔씩
“그땐 참으로 고마웠다”고 이야기하면 “
신혼이라 시간이 많았었나 봐요”하고 정작 본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겸손하게 웃는 교사였다.
이렇게 3년을 함께하고 있는 교사였기에 친정어머니께서
쓰러지신 소식은 오랜 시간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그 이후로도 여전히 웃음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에게
어머니의 병세에 관해 물어보면, 코로나19로 인해 면회가 되지 않고
얼마 전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겼을 때 잠시 뵈었는데
딸을 잘 못 알아보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간이 필요한 병이고 이럴 때 엄마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냐며 함께 기도하겠다며 본명을 물으니 ‘아녜스’라 하였다.
뇌출혈로 인해 뇌병변 장애까지 생긴
내 남편의 상황을 잘 아는 교사이기에,
나보고 어떻게 그 시간들을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견뎌냈냐며,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놀랍기만 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웃으며 “선생님은 엄마를 위해서
지금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하고 물었더니
“병원에 면회도 안 되니 기도밖에 없어요”라고 대답하였다.
“나도 그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었고,
기도하는 나에게 어둠이 들어오지 못하였기에
슬플 이유도 없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오늘 오후에도 엄마를 면회하고 온 이야기를 하면서
매일 기도로 사시던 분이 기도를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며 걱정을 한다.
걱정보다는 딸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자고 하였다.
“뇌출혈로 인해 기도가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프린트하여 코팅해서 침대에 달아 놓고, 1주일에 15분씩만
가족과 면회할 수 있으니 많이 우울해 계시는 엄마에게
매주 갈 때마다 편지를 전해 보는 건 어떨까?”하고
진심을 다하여 이야기하였다.
주님께서는 이렇듯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게 하시고,
그 길을 먼저 간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시기에 지금 이 순간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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