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르는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아브람은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6,1-12.15-16<또는 16,6ㄹ-12.15-16>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1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그에게 자식을 낳아 주지 못하였다.
사라이에게는 이집트인 여종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하가르였다.
2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여보, 주님께서 나에게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하시니
, 내 여종과 한자리에 드셔요.
행여 그 아이의 몸을 빌려서라도 내가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아브람은 사라이의 말을 들었다.
3 그리하여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자기의 이집트인 여종 하가르를 데려다,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주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자리 잡은 지 십 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4 그가 하가르와 한자리에 들자 그 여자가 임신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제 여주인을 업신여겼다.
5 그래서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부당한 일을 겪는 것은 당신 책임이에요.
내가 내 여종을 당신 품 안에 안겨 주었는데,
이 여종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업신여긴답니다.
아, 주님께서 나와 당신 사이의 시비를 가려 주셨으면!”
6 아브람이 사라이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손에 달려 있지 않소? 당신 좋을 대로 하구려.”
그리하여> 사라이가 하가르를 구박하니,
하가르는 사라이를 피하여 도망쳤다.
7 주님의 천사가 광야에 있는 샘터에서 하가르를 만났다.
그것은 수르로 가는 길가에 있는 샘이었다.
8 그 천사가 “사라이의 여종 하가르야,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저의 여주인 사라이를 피하여 도망치는 길입니다.”
9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 “너의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여라.”
10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의 후손을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게 해 주겠다.”
11 주님의 천사가 또 그에게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한 몸, 이제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
. 네가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셨다.
12 그는 들나귀 같은 사람이 되리라.
그는 모든 이를 치려고 손을 들고, 모든 이는 그를 치려고 손을 들리라.
그는 자기의 모든 형제들에게 맞서 혼자 살아가리라.”
15 하가르는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아브람은 하가르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다.
16 하가르가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아 줄 때,
아브람의 나이는 여든여섯 살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독서에서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라이는
자기 여종인 하가르를 통하여 남편 아브람에게 아이를 낳아 주려고 합니다.
사라이의 태도는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내용과 흡사합니다.
그 법전에 따르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은 몸종을 남편의 소실로 줄 수 있었고
그 아이는 본부인의 친자식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지략을 통하여 사라이는
자신의 불운한 처지와 난관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하였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사라이의 계산과는 다른 방법으로 전개됩니다.
곧 사라이는 하가르가 낳은 자식으로
자신의 지위가 올라갈 것이라 기대하였으나,
하가르에게서 괴로움을 겪게 되고 이를 아브람에게 호소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길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의 절정은 불의를 당하던 사라이보다는
그것 때문에 구박받는 하가르에게 하느님께서 오히려 호의를 베푸신다는 점입니다.
하가르는 주님의 천사를 만납니다.
천사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메시지를 전해 주는 존재로서,
천사와 만나는 것은 곧 구원의 체험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천사와 만남은 일정한 장소나 시간에 매여 있지 않으며
인간의 능력 밖에 있는 것이지요.
천사가 하가르에게 낳게 될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로 부르라고 지시한 것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하가르가 고통 중에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에는 하가르가 부르짖었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그 자체가 소리가 되고,
하느님은 바로 그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사라이와 하가르의 상황은 묘하게 대조됩니다.
곧 사라이는 자기 힘을 믿고 괴로울 때
‘내가 겪는 불의에 책임을 지라.’고 아브람에게 호소합니다.
반면 하가르는 하느님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지도 않았으나,
그 소리가 하느님께 들려 하느님께서 그 호소에 응답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온갖 불의와 갈등,
고통의 진정한 해결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점을 독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 말씀도 놀랍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기적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한 것이 아닌 셈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이름을 빌려 자기 마음대로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하느님의 뜻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