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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교리] 세례성사 / ‘세례-견진-성체성사’가 왜 입문성사인가?

Berardus 2021. 4. 21. 06:04

[교회교리]

세례성사

‘세례-견진-성체성사’가 왜 입문성사인가?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29~1245항
인간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로 옮겨가는 문의 의미 ‘입문성사’
‘태어남-성장-영양분’ 과정 거쳐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

영화 ‘십계’(1956)에서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께서 홍해를 갈라주시는 장면.

세례는 제 뜻으로 문을 통과함이 아니라 참 부모인 하느님께 자신의 주도권을 이양하여,

세속에서 하느님 나라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영화 ‘십계’ 장면 갈무리-

 

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세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 부모의 노력으로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태중에서 잘 보살피고 성장하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영양분을 공급하는 일입니다.

그다음 부모는 아기를 낳습니다.

이렇듯 아기는 ‘수정(태어남)-성장-영양분’의 세 요소를 통해 탄생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엄마 뱃속의 세상에서 가족이라는 새 세상으로 입문합니다.

아기가 탄생했다고 저절로 어른이 될까요?

아기는 부모 품에서 살지만, 어른은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기를 성장시키기 위해 보호하고 양식을 줍니다.

부모는 아기를 낳을 때 피를 흘리고(태어남), 성장시키기 위해 희생하며(성장),

양식을 주기 위해 살과 피를 내어줍니다(영양분).

아기가 부모의 품에서 세상에 입문하기 위해서도

‘태어남-성장-영양분’의 요소가 필요한 것입니다.

위 세 요소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남은

곧 새로운 세상으로의 옮겨감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는 ‘태어남-성장-영양분’의 세 요소를 ‘세례-견진-성체성사’로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과정을 통해 인간 세상에서 하늘 나라로 옮겨갑니다.

문(門)은 어떠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교회는 ‘세례-견진-성체성사’를 한 인간이 세속에서

하느님 나라로 옮겨가게 만드는 문이라 여겨 ‘입문성사’(入門聖事)라 합니다.

아기가 잉태되거나 부모에 의해 낳음을 받는 것은 아기의 자유의지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신을 맡겼기에 부모의 뜻에 따라 그렇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세례는 제 뜻으로 문을 통과함이 아니라

참 부모인 하느님께 자신의 주도권을 이양하는 순간입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파라오가 아닌 모세에게

자신들의 주도권을 이양하여 홍해를 건너며 세례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1코린 10,1 참조)

세례는 ‘회개의 세례’와 ‘성령의 세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회개의 세례란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 참 행복임을 믿고

나의 주도권을 주님께 이양하려는 결심의 단계입니다.

회개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성령의 세례를 받는데,

이를 위해 먼저 “예비신자 기간”이 필요하고, “교리교육 과정”(1233)을 거쳐야 합니다.

홍해를 건넌 백성이 그러했듯 참 성령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더는 자기를 위해 살 수 없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나와서도 여전히

파라오를 섬기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바위에서 솟는 물로 그들의 목을 적셔주며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 힘으로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면서도 이집트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1코린 10,4)

마찬가지로 교회도 “세례의 도유를 ‘견고하게 하고’

완성”(1242)하도록 견진성사로 세례자들을 돕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성체성사 때마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께 순종하겠다는 소명을 되새깁니다.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면, “사제이며 예언자이고 왕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1241)이 됩니다.

그러므로 기름 부음은 소명의 옷을 입음과 같습니다.

새로운 의복은 곧 새로운 소명을 말하는데,

사제의 의복을 입고 다른 종교의 예식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성체성사’(요한 6,56 참조)는

곧 ‘사랑의 계명을 지킴’(요한 15,10 참조)과 직결됩니다.

동방교회는

‘세례와 견진과 성체성사’를 하루에 순차적으로 다 받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 입문 과정(세례-견진-성체)이

단일한 것임”(1244)을 전통적으로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로마 전례 세례 예식 안에도 견진 예식인 “축성 성유의 도유”(1241) 예식이 남아있습니다.

세례와 견진 다음에 성체성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세례-견진-성체성사’를 거치며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다시 말해 위 세 입문성사로 하늘 나라의 굳게 닫힌 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