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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는 시기. 사순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 신부)-
제가 사목하고 있는 피정센터는 아주 한적한 바닷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정 붙여 살아가다 보니 주변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겨울은 그야말로 황량함 그 자체였습니다. 매서운 추위와 강풍. 폭설과 길고도 지루한 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봄이 다가오면 언제 그랬냐든 듯이 상황은 반전됩니다. 잠잠하던 어촌이 역동적인 활력으로 가득 찹니다. 지천으로 피어오는 꽃들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참숭어나 도다리. 우럭이며 놀래미가 다시 돌아와 낚시꾼들을 유혹합니다.
아직 낚시하기엔 이른 계절이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에 가까운 갯바위로 나갔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역시나였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잔챙이 한 마리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아닌가 보다..하고 낚싯대를 접으려는 순간. 아주 미세한 입질이 왔습니다. 잽싸게 챔질을 해서 끌어올렸습니다. 잡혀 올라온 녀석은? 복어 중에서도 제일 졸병인 새끼 손가락만한 졸복이었습니다. 꽉 물고 있는 바늘을 조심스럽게 빼내서. 손바닥위에 올라놓았는데. 녀석의 행동이 정말이지 웃겼습니다. 잔뜩 몸을 부풀려 엄청 빵빵 해진 것입니다. 나 무서운 고기니 건들지마라...는 표현 같았습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무섭기는 커녕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다시는 오지 말라..며 저 멀리 던져 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하느님 눈에 복어 새끼나 나나 별반 다를 바 없겠구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별것도 아니면서 틈만 나면 자신을 있는 대로 부풀리는 모습. 든 것도 없으면서 잔뜩 스스로를 과대포장하는 모습. 회칠한 무덤처럼 속은 심하게 부패했으면서도 겉만 번지르르하게 닦고 있는 모습이 어찌 그리 꼭 빼닮았는지요. 사순시기가 깊어 가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기간 동안 작은 목표를 세워 실천해 봐아겠습니다. 뻣뻣해진 목이나 어깨에 힘을 빼는 작업. 과대포장을 벗겨낸 후 . 있는 그대로의 내 부끄러운 실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작업. 나는 꽃이요 주인고이 아니라 잎이요 조연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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