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신앙살이] ‘줄포 선생님’
내가 처음 공소 소임으로 이동했을 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새벽 미사 때
독서 봉사를 하시는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교우분들과 인사를 나눌 때면
신자들은 나뿐 아니라 그 형제님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 선생님,
추운 디 이곳까지 오시느라 고생했소-잉.”
그러면 그 형제님도
교우분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합니다.
“아뇨,
저도 이렇게 공소에서 미사 드리고,
독서까지 해서 좋구먼요.”
그래서 나는 그분이
선생님인 걸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선생님은 얼마 전까지
이곳 심원 중학교에서 근무하셨고,
지금은 다른 지역의 학교로 발령받아 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공소에 와서 독서 봉사를 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공소에는
평일 미사오시는 분의 수도 적지만,
미사 때 독서하실 분들이 거의 없다 보니,
고정적으로 몇 분이 돌아가면서 독서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미사 독서 봉사자를
찾는 것이 또 하나의 어려움입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미사 나오시는 분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독서하시는 분조차 매일 새벽에
미사 나오기가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 특성상 농사를 짓고 바다에서
조개잡이 작업을 나가는 등
힘든 일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 오셔서 미사 독서를
해주실 때마다 고맙다는 생각이 무척 들었습니다.
그 후 코로나19로 인해
교우분들과 함께 봉헌하는
미사가 잠정적으로 중단됐고,
한동안 선생님의 얼굴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다시 교우분들과의 미사가 재개됐는데도
선생님은 미사에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궁금하던 차에 공소 분들에게 물었더니,
“지금 학생들 방학이라
선생님은 본가에 갔을 겁니다.
그리고 개학하면 여기 미사에 오실 거예요.”
그래서 그 선생님의 본래 집이
이 지역이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또 다시 그 후에 알게 된 것은 그분이
‘줄포’라는 곳의 중학교에 근무하셨고,
그곳 공소 미사에 가신다는 것입니다.
‘줄포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지만,
그래도 고창군 안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있는 수도원에서는
형제들과 한 달에 한 번
그 동안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 후
저녁 식사로 외식을 합니다.
사실 함께 사는 형제들 세 명이 교대로
식사 당번을 하고 있기에,
외식을 하는 날은 마음속으로
웃음이 날 정도입니다.
특히 그 주간 식사 당번이 ‘나’라면
더욱 환호성을 올립니다.
그래서 그날, 조금은 멀지만,
곰소라는 동네 ‘16가지 젓갈’에
뜨거운 밥이 나오는 식당을 찾아냈습니다.
이에 형제들과 함께 거기서
외식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곳은 지도상으로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지만,
차로는 거의 45~50분 정도를 달려야했습니다.
그렇게 그 식당을 찾아
시골길을 한참 달리는데, 순간!
‘줄포 중학교’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우리 세 사람은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헐…! 여기가 줄포 중학교!
그럼 선생님은 이렇게 먼 곳에서
새벽에 미사 독서하러 오셨다는 말인가!”
이제야 알았습니다.
우리 공소 식구들은 그분이 단지
선생님이라 존경을 표한 것이 아니라,
독서 봉사를 하려고 먼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신 그분의 신앙심에 감사를 표시했던 것입니다.
나 또한 이 먼 거리를 일주일에 한두 번,
꼬박꼬박 독서 봉사하러 오신
선생님께 더욱 감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개학이 되어 선생님이 공소 미사에 오시면,
나도 우리 공소 식구들과 함께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릴 다짐을 해 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신앙을 지켜 가시는 봉사자분들게
진심 고마움을 고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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