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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미혼부는 부모가 아닌가요

Berardus 2021. 2. 15. 07:11


 "미혼부는 부모가 아닌가요


출생신고 못해 보호 못받는 문제 심각

친모만 아이 출생신고 가능한 현행 법

주민등록 없는 아이 방치돼 비극 잉태


친모만 출생신고가 가능한 현행 법에 문제가 많다.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경기도 이천에 사는 미림이(가명)는 6살이 됐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림이는 엄마가 전남편과 이혼을 하기 전에 태어났다. 민법상 이혼하기 전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는 민법상 법적인 남편의 아이로 추정한다. 민법상 친생자 추정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림이는 엄마의 전남편 자녀로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일단 엄마의 전남편의 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 가족관계서류를 다시 정정해야 한다. 미림이 친아빠는 미림이 출생신고를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가정법원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사실 미림이 같은 사례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많다. 인천 미추홀 사건도 엄마가 이혼소송을 마무리 짓지 않은 상태에서 낳은 아이를 키우다 아이의 친부와 출생신고 문제를 놓고 다투다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2015년 5월부터 작년 12월까지 미혼부의 출생신고는 총 664건 접수됐다. 이 중 20%인 138건은 기각됐다. 최소 138명의 아이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상태로 사는 것이다. 무적자 아이들의 출생신고를 돕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의 품’ 김지환 대표는 “지난 한 해 동안 소송 등을 통해 출생신고 및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도록 도와준 아이가 20명, 소송 비용만으로 2000만 원 이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미혼부ㆍ모의 존재 자체가 비극을 잉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인천 미추홀 사건과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국민의힘 양금희ㆍ 김미애 의원 등이 제출한 다양한 개정안이 계류되어 있다. 서영교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은 혼인 외 자녀의 출생신고를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아빠가 엄마의 성명,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아는 경우에도 혼인 외 자녀에 대하여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양금희ㆍ신동근ㆍ정청래 의원이 제출한 안은 4년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안한 것처럼 출생신고 의무는 부모에게 있지만 분만에 관여한 의사 및 조산사가 아동의 출생 사실을 국가기관 등에 통보하도록 개정하자는 것이다. 김미애· 백혜련· 남인순 의원의 개정안은 아빠가 엄마의 성명,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아는 경우에도 혼인 외 자녀에 대하여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법무부와 법원행정처는 현행법에 구멍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개정에 따른 법적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가족관계 서류에 엄마를 기재하지 않고 부자 관계만 창설하는 게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 데다 엄마가 혼외자 출산 사실을 은닉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아울러 현행 민법상 친생자추정 규정이 사문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이밖에 산부인과 의사들도 출생통보제가 시행될 경우 아무런 대가 없이 행정 부담은 물론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회와 행정ㆍ사법기관들이 미적대는 사이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아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지난 1월 8일 인천 미추홀에서 사망한 C양의 사망증명서는 출생신고가 없었던 만큼 ‘무명녀’ 즉, 이름 없는 사람으로 기록됐다. 아울러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채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으로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영교 의원은 “어떤 이유로든 아이의 출생신고를 국가에서 받아주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법 개정을 요구했다. 자오나학교 교장 정수경 수녀는 “현실적으로 출생통보 후 추적이나 관리 등 보완할 문제가 많겠지만 한 명의 아이라도 더 보호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박병수 청소년인권과장은 “각종 우려도 있고 협의도 필요하지만 그러는 사이 몇 년이 그냥 지나갔고 끔찍한 피해가 발생했다”며 “최대한 빨리 법을 개정해서 아동들이 출생하면 바로 등록돼서 국가의 보호체계 안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나? 미국ㆍ캐나다ㆍ영국ㆍ호주ㆍ 독일 등에서는 아동의 부모 등에게 출생신고의무를 부과하는 것과는 별도로 의료기관에 출생통지의무를 부여하여 출생신고의 누락이나 거짓된 내용의 출생신고를 예방하고 있다. 미국 대부분의 주와 캐나다의 경우, 일반적으로 병원 등 아동이 출생한 기관에 대하여 출생에 관한 정보를 기록한 출생증명서를 지역 신분등록담당관에게 제출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출생한 기관에서 출생증명서를 제출하면 지역 신분등록 담당관에 의하여 아동에 대한 출생등록이 이루어진다. 영국의 경우 병원에서 아동이 태어나면 병원의 등록시스템을 통해 해당 아동에 대한 의료보장번호가 발급돼 국가가 먼저 아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와 별개로 부모는 출생에 대한 정보를 신분등록 담당관에게 제공하고 있다. 호주는 병원에서 아동이 태어나면 병원이 아동 출생 후 7일 이내에 담당 공무원에게 출생 사실을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며, 부모는 아이가 출생한 날부터 6개월 이내 일정한 양식의 출생신고진술서를 작성해 신고할 의무를 부담하도록 한다. 독일은 양육권을 가진 부모와 더불어 출생 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출생지를 관할하는 신분청에 출생을 신고할 의무를 부과한다. 아동이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경우 부모 외 기관장 역시 아동 출생 후 1주일 이내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이상도ㆍ전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