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교리]
예언자직
(「가톨릭 교회 교리서 888~892·904~907항)
복음을 선포하는 직무, 예언자직
그리스도 증인이며 구원의 도구
믿음 위해 복음 선포하는 일은
교계만이 아닌 모든 신자의 몫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인’(기름 부음 받은 자)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삼중직무인 ‘예언자직, 사제직,
왕직’에 참여함을 의미합니다.(897 참조)
세례 때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께서는 왕이요, 사제요, 예언자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왕이요, 사제요, 예언자인 것입니다.
의사가 되어 의사로서의 소명을 수행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의사가 된 것이 아닌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의 삼중직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이고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가 된 것”(795)입니다.
‘예언자’는 성령을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해주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주님을 드러내 보여주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증인”(785)이 됩니다.
복음을 전함으로써 구원자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낭떠러지로 가는 시각 장애인에게
그 길로 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언자직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하지 않을 수 없는 직무입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에 갇혀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며
그것이 세상 전부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 풀려나
생전 처음으로 밖의 참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러자 동굴 안의 사람들이 불쌍해집니다.
바깥세상을 즐겨도 되겠지만
그는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와
자기가 본 것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그의 증언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틀린 삶을 살고 있음을 인정하기 싫은 것입니다.
그들은 작당하여 진리를 전하는 이를
죽여 버리고 이전처럼 벽만 보며 살아갑니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던 지학순 주교가
1974년 7월 23일 김수환 추기경(가운데),
윤공희 대주교(김 추기경 왼쪽)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심선언’을 하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통해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라고 강조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이것이 ‘예언자의 운명’입니다.
자신만 아는 진리를 어둠 속 사람들에게
전해주다가 결국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알고도 박해가 두려워
선포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과 반대됩니다.
진리와 반대됩니다.
알면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예언자 직무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루카 13,33 참조)
그리고 그분을 따라 진리를 증언하던 제자들도
그 예언자직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박해받고 순교하였습니다.
(2티모 3,12 참조)
그래도 우리는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합니다.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 9,5)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본성상 빛을 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고 하십니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고 김수환 추기경은
예언자직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덕분에 한국가톨릭교회가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8항)라고 하였으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앙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선포하며,
주저하지 않고 용기 있게 죄악의 정체를 밝히고
죄악을 고발할 수 있는 (예언자적) 역량과 책임”
(「평신도 그리스도인」 14항)을 지닌다고 하였습니다.
교황과 주교단,
혹은 교회 전체가 세상에
이러저러한 공통된 목소리를 낸다면 신자들은
그 목소리에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직무를 위해 주님께서는 교황과 주교단의 일치 안에서
그 가르침에 오류가 없도록 “무류성”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891 참조)
주교들은 협력자인 사제들도
모든 신자들 앞에서 “신앙의 선포자”이며,
“그리스도의 권위를 지닌 스승”
(888)으로 예언자직을 수행합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인
성직자들의 가르침에 대해, 마치 예언자를 바라보며
“신앙의 동의”(892)를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과
같은 공경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권한은
“교계만이 아니라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예언자직을 수행하는 것”을 통해 확장됩니다.
“사람을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가르치는 일은
설교자뿐 아니라 모든 신자의 일”(904)입니다.
신자들은 끊임없이 성직자들이 도달할 수 없는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생활의 증거와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할 기회”(905)를 찾아야 합니다.
천국 가는 길을 알고 있으면서,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전하려 하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그 길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선포가 곧 천국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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