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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20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Berardus 2020. 6. 14. 17:06

2020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화해와 평화의 한반도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에페 2,1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로 6·25 전쟁 발발 70주년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6월은

남과 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참혹하게 치렀던 6·25 전쟁의 아픔이 되살아나는 때입니다.


70년이 지난 과거의 일인데도 전쟁의 아픔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은,

같은 민족 간에 치른 전쟁으로 그 피해가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온 국토를 오가며 전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이 마을 저 마을 많은 곳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수없이 학살되었고, 이러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들을 널리 대대로 전하였다는 것도 큰 이유입니다.

 

게다가 학교에서 받은 반공 교육과 공산당이 저질렀던 만행을 듣고 자란 세대들에게

 6·25 전쟁과 공산당으로 상징되는 북한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집단이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공산당에 대한 혐오는 북한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져 한국 사회 안에서

이념과 노선을 구분하는 잣대가 되었습니다.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짓누르며,

편을 가르는 장벽이 되어 자유롭고 폭넓게 성장하지 못하게 만든 이 민족적 족쇄를

이제는 끊어 내고 일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슴속에서 6·25 전쟁의 아픔과 기억이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듯이,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으로 인한 전쟁 중단 상태도 거의 70년 동안 계속되고 있으며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 선언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정전 상태라는 현실 때문에 그동안 한반도는 평화의 길로 가는 여정에서 험난한 시간을 걸어왔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몇 차례의 희망적인 시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살얼음판을 걸어왔던 한반도 평화 여정에 희망을 준 것은

지난 2018년 판문점에서 있었던 남북 두 정상의 만남이었습니다.

두 정상의 만남은 무척 감격스러웠으며,

이 만남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 여정은 힘찬 새 출발을 하리라는 희망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희망을 담았던 ‘판문점 선언’은 아직까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는 것은 남북 간의 이해 충돌이나 대화 부족의 문제만이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 문제를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원인입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풀릴 듯 풀리지 않는 평화의 이 실타래를

과연 우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이제는 용서하고 평화로 무장해야 합니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 나라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채 분단과 6·25 전쟁의 상흔을 극복해야 할 큰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분단과 6·25 전쟁의 후유증은 오랜 세월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 심지어 국민의 사고까지 제약해 왔으며,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정치 문화는 뒤처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화 협정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정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인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탓하기보다

남북이 먼저 손을 잡아야 합니다.

 

이는 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남북이 가야 할 최선의 길입니다.

한반도 평화를 해결할 수 있는 주인공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우리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이 힘을 모아야 하고, 그 힘이 모아지기 위해서는 화해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야말로 그동안 남북 사이에 큰 장애물이 되었던 적개심과

전쟁의 고통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이 하나 되기 위하여 손을 잡는 새로운 출발의 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갈라진 민족을 하나로 만드시려고 십자가에 몸을 던지셨으며,

 평화를 위해서는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없애고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에페 2,14 참조).

 

교회 또한 소강상태를 거듭해 온 남북 관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 교회와의 교류에서 별다른 진전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북한 교회는 현재 제도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아직은 부족함이 많을 수밖에 없기에,

앞으로 남북 천주교회의 다양한 형태의 교류를 통하여 북한 교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 천주교회는 한반도 평화를 간절히 염원하며 매일 밤 9시에 주모경을 바쳐 왔습니다.

평화를 위하여 매일 기도하는 우리는 먼저 각자 스스로 적개심을 버리고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더 열심히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형제애를 넓혀 가며 저마다 평화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그동안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평화와 화해에 대한 교육과 실천적 노력들이

모든 교구와 본당 안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에 바랍니다. 그동안 북미 관계를 비롯하여 국제 연합(UN)의 대북 경제 제재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남북 관계는 전혀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대로 대북 경제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방법들을 찾아 적극 실행해 나갈 것을 요청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과 가족을 그리다 생을 마감하는 이산가족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들의 소원이 물거품이 되지 않게 다양한 형태의 이산가족 상봉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비롯하여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은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전 선언과 함께 한반도 평화 협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한반도 평화 여정에 전환점이 될 것이며, 아울러 국제 관계도 새롭게 형성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 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는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위기를 먼저 겪은 우리 나라는 정부와 의료진들을 비롯한 많은 봉사자들과 온 국민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는 나라로 전 세계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으며 그만큼 국가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어느 나라 못지않게 어려움을 겪고 있을 북한을 위하여 코로나19 방역과 감염 방지를 위한

여러 기술과 장비를 지원해 주는 일이야말로 지금 한국 정부와 사회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미사는 6월 25일,

전국의 모든 교구에서 함께 봉헌됩니다. 이 미사에 몸과 마음으로 동참해 주십시오. 16개 교구에서 바치는

우리의 기도는 이 땅에 평화의 싹이 자라게 하는 단비가 될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에게 주님의 자비가 가득 내리기를 바랍니다.


2020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