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멜로씨에게 전화 걸고, 그의 농장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오르막길 초입에서 한 초라한 할아버지가 태워 달라며 굽은 몸으로 겨우 손을 흔든다. 차를 세우니 할아버지가 힘들게 차에 올라탄다. 할아버지는 읍내에 있는 병원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고개 너머 마을에 사는데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산 지 십 몇 년이 된다고 했다. 나이가 여든인데 아버지의 고향에서 죽고 싶어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신 차를 세우고 태워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보통 차를 잘 안 세워 주는데 세워 줘서 감사합니다.... 요새는 우리 같은 노인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다치면 내가 돈을 낼 낀데... 태워 준 것만도 고마운데...” 할아버지가 하신 마지막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어 이런 저런 질문의 말을 주고받으며 겨우 알게 된 것은 이렇다. 운전자들은 길에서 손 흔드는 노인들을 잘 안 태워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노인들이 차에서 내리다가 발을 잘못 디뎌 삐꺽할 수도 있고 다른 이유로 다칠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운전자들은 노인을 길에 내려놓고 갈 수 없어 병원까지 모시고 가게 된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이후 병원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노인들은 운전자의 차를 타고 가다가 다쳤다고 말하게 되고, 그럴 경우 교통사고로 처리되는데 운전자는 원치 않게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차에서 다친 노인이 아픔을 호소하면 어쩔 도리 없이 운전자가 덤터기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차를 탄 노인이나 노인의 가족들 중에 운전자를 변호해주는 이는 없고.... 이용할 때는 언제고 불이익을 줄 때는 언젠가 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전자들은 이런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무정하지만 아예 노인들을 외면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냥 지나칠 때는 마음이 편치 않겠지만 그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다치면 내가 당연히 돈을 낼 건데.... 고마운 사람에게 피해야 줄 수가 없지 않나.” 라는 노인의 말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풍조를 느끼면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처럼 정이 떨어진 사회로 변했는가? “일본에서는 친절한데...”라고 되뇌는 노인의 말이 더욱 가슴을 저미게 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죽으니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숭례문이 무너졌다고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었다. 언론은 신바람 난 듯 연일 이 일을 보도하였다. 문화재 관리가 소홀했다고 책임소재지를 따지며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보도태도는 문화재에 대한 사랑에서라기보다 흥밋거리를 제공하는데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문화재청장이 청장이 되기 전에 문화재의 졸속 복원을 그렇게 비판하더니 그가 막상 문화재 청장이 되니 오히려 문화재의 졸속 복원을 자기의 임무인 양 주장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옳다. 하지만 문화재청장의 정신 상태가 어찌 그 한 개인의 정신 상태이기만 한가? 그것은 이를 보도하는 자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무너져 내리는 정신 상태이기도 하다. 자기의 실리만을 찾는 가운데 우리는 점점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이기적이 되면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신뢰가 무너지니 정이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지금 내 혈육, 내 집, 내 고장, 내 민족 안에만 정을 가두며 이웃에게 배타적으로 변하여 우리를 병들게 한다. 내 이웃을 살피지 않는 병든 모습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관광버스에서도 실감한다. 안전벨트를 구비해야만 운행이 허락되지만 막상 운행할 때는 안전벨트가 무시된다. 승용차에서는 국도에서도 안전벨트를 매지만 그보다 결코 안전하다 할 수 없는 관광버스에 올라타면 고속도로에서도(때로는 고속도로이기에) 안전벨트를 풀고 좁은 복도에 나와 몸을 비비며 춤추고 노래한다. 이를 말리면 신이 가기에 눈감아 주어야 한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버스회사는 물론이고 인솔자와 승객을 통틀어 탓하며 책임을 묻는다. 벌금형 전력자는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고서도 이를 지킬 수 없고, 지켜서는 나라가 경영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사기를 쳐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기를 치지 않고서는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사회. 법은 입에만 있고 몸과 마음으론 지키지 않아도 되는 사회. 자신을 십자가에 죽이어 남을 살게 하신 주님의 부활절에 이 사회가 진정 이웃의 생명과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과 생명을 희생하는 정든 사회로 태어나기를 희망해 본다. - 이제민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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