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영성]
"언제나 기뻐하십시오”“기쁨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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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구나!
기쁨이란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기억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릴 때 오는 것이구나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라면
성경이 필독서가 아닐 수 없다.
성경만큼 하느님의 뜻이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없으니 말이다.
영적으로 아주 특별하여 성령의 감화를
직접 받는다면 몰라도 보통 사람이라면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를 지나가시면서 하신 말씀,
당부, 행위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콜라레 운동에서는
매달 전 세계 회원들이 복음의 한 구절을 함께 기억하며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를 ‘생활말씀’이라고 한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이 땅 위 삶이며
또한 우리가 생활해야 할 말씀이라는 뜻이다.
어느 해 12월 저녁나절,
생활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며
그 경험을 함께 나누는 이들의 모임이 있었다.
당시는 아직 우리 지역에서 이 영성에
관심을 가진 이가 적기도 했지만,
추워서 그랬는지 그날따라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딱 한 명의 참석자와
어느 성당 교리실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어야 했다.
내가 다니는 본당이 아닐뿐더러
참석자도 적고 그 본당 신자도 없어서
난로를 좀 켜 주십사고 사무실에 부탁드릴 처지도 아니었다.
연락을 맡은 입장으로서는
“갈게요”라고 하던 이들의 답이 슬금슬금
원망스러워지면서 마음도 자연히 기온만큼이나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그 이전에 생활말씀으로 살았던,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 20)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단 두세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둘이니 여기도 그분께서
함께하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미 우리 둘과 그분이 함께 모였으니
셋이라는 결론이 난 것이다.
게다가 그 마지막 분은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가!
그래서 힘을 얻고 그 참석자와 함께 그달의 생활말씀을 펼쳤다.
그 복음 구절은 마침,
“언제나 기뻐하십시오”(1테살 5,16)였다.
속에서 울컥 감동이 솟구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구나!
기쁨이란 바깥일이 잘 풀려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기억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릴 때
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쁨은 내가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릴 적 부활절 자정 미사 때
졸다가 들었던 부활 종소리가 떠올랐다.
복사가 흔드는 종뿐 아니라 오르간,
성당 종각의 종, 성가대의 우렁찬 합창이
일시에 울리던 그 순간의 뜻 모를 감격 같은 것이었다.
그 기쁨은 수난 이후에 맞는 새 생명의 기쁨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따라,
우리 자아가 죽은 후에 새사람으로
되살아나는 그 환희인 것이다.
정말 마음 저 밑바닥으로부터
서서히 기쁨이 차올랐다.
그날처럼 모임이 알찬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열이나 스물이 아니라 마치 만석이라도 되는 듯
충만함에 차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생활말씀을 읽으며 한 달 동안 살았던 경험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 하느님께서는 내 마음속에
‘언제나 기뻐하십시오’라는 말씀을 인장처럼 새겨 주셨다.
즐겁고 신나거나
흡족한 감정들과는 차원이 다르며,
무엇이 채워져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선택했는가,
즉 사랑을 선택했는가에 딸린 그것이 기쁨임을 알 것 같았다.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로
편지를 보내던 그 시기에 사도 역시
“잠시이기는 하지만 여러분을 떠나
고아처럼 되었습니다”(1테살 2,17 일부)라고
고백한 시기가 아니었던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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