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復活)을
기다리는 사순시기(四旬時期)란?
사순 시기 일곱 주간은
모든 전례주년의 중심이며
모든 구원 신비의 종합인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다.
세례, 견진, 성체 성사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을 받지 않은 예비자들은
이 시기 동안 입문 성사들을 준비하여
위대한 파스카 밤에 그 성사들을 받으며,
이미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절 동안 자신의 의무를
다시금 되새기면서 새롭게 된 은총을 받는다.
이러한 사순절 40일은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사막에서 사탄과 대적하고
그 유혹자를 이기셨던 40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사막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양육되셨으며
악마의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결정적으로 아버지한테서 받은 길,
곧 십자가의 겸손을 통한 구원을 선택하셨다.
이 시기 동안 우리 역시 하느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더욱 귀 기울이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셨던 길을 따르는 데 필요한 힘을 얻는다.
살아 계신 이 말씀께서는
특히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양육하신다.
살아 계신 빵은 그리스도를 따라 걸어가는 우리를 지탱해 주신다.
이러한 발걸음의 표상은 우리로 하여금
사막과 해방과 노예생활에서의 탈출을 거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구약의 하느님 백성을 위한 기적의 시기였다.
그러나 사실 이 기적들은 우리를 위해서
미리 보인 것들이다 (예형).
만나는 우리들에게 성체성사이며,
바위에서 솟아 나온 생수는 영의 선물이고,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찬란한 빛은
진리와 빛 자체이신 그리스도이시며, 율법은 복음이다.
40일 동안 우리는
이러한 성서의 변천을 다시금 거쳐 간다.
그러나 이러한 거쳐 감은 우리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특히 성서의 사건들이 교회 안에서 계속되고
그 사건이 완성됨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하심 앞에
우리가 범한 죄를 더 예민하게 인식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예수께 대한 신뢰보다는
하느님의 옛 백성이 지녔던 완고한 마음을
더 닮았으며 또 닮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이 얼마나 약한지,
또 우리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아프게 되새긴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이라는 조건에 대해 안다는 것이
아무런 희망도 없는 낙담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망과는 반대로 용서하시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는
자비로우신 사랑에 대해 우리의 신뢰는 더욱 새롭게 될 것이다.
전적으로 사순절은
십자가에 처형되신 주님을 통하여
죄를 범한 사람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깨달음으로써
감동한 우리가 찬미를 바치는 때이다.
그래서 사순절은
되돌아감과 회개와 고백의 때,
즉 슬픔과 가책에서 은총으로
생명의 기쁨으로 변화하는 때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세례와 그리스도교 입문의 은총을 다시 받는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처럼 (요한 4,5-42)
예수와의 만남 또는 태중 소경 (요한 9,1-41)과
나자로 소생 이야기 (요한 11,1-45)와 같은
기적들이 우리를 위해 현재화된다.
복음에 나오는 이러한 만남과 기적들은
우리의 세례를 통해 일어나는 사건의 상징이며 예형인 것이다.
이 성사들은
주님의 생명을 다시 살게 하며 현존케 한다.
기도와 참회 (보속)는 전 교회의
“영신 수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계획인 것이다.
우리의 진지한 의지가 없다면
파스카는 시간이 흐르면서 따라 오는 것일 뿐이므로
파스카의 은총은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와 함께 교회가 전례를 통하여
가르치는 길을 따라 사순절을 보내는 사람은
그 자신 안에 새로운 무언가를 열매 맺을 것이다.
즉, 생각이 바뀌고 의향이 정화되며
행동이 개선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파스카의 신비가 살아 움직이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혼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한다는 뜻이다.
이 시기에 경이롭고
외적인 무슨 예외적인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부활이 침묵 가운데 우리 실존 안에 이미 싹트기 위해,
날마다 예수의 수난에 동참하면
- 그래서 사순절 동안 십자가의 길이 중요하다 -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로 시작하여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전에 끝난다.
항상 이 시기의 주일들은
주님의 축일과 모든 대축일에 우선한다.
이 주일들과 겹치는 대축일은 토요일에 미리 거행된다.
사순 제6주일은 성주간의 시작으로서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라고 부른다.
모든 사순 시기의 미사에서 대영광송을,
그리고 모든 전례 거행에서 알렐루야를 부르지 않는다.
사순시기 평일 미사의 감사송은
사순 감사송, 주일에는 고유 감사송을 바친다.
재의 수요일은 단식의 날이고
사순절 금요일은 금육을 지킨다.
사순시기 동안 제의 색깔은 자색이다.
“기뻐하라” (Laetare) 주일인
사순 제4주일에는 장미색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사순시기 동안
성당의 꽃장식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사순 제4주일은 가능하다.
●사순시기란?
‘사순 시기’에서
사순은 본래 40일이라는 뜻으로,
이 기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고통을 체험하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회개와 보속으로 새롭게 하여
다가올 부활 축제를 준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재의 수요일부터
교회 전례력으로 사순시기가 시작된다.
신자들이 사순시기를 더욱 잘 이해하고
합당한 생활로 뜻깊게 지내도록
사순시기의 유래와 의미, 전례 등에 대해 알아본다.
●유래
사순 시기는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초대교회 때 그리스도인들은 부활대축일 전
2∼3일간 금식하며 부활을 준비했고,
4세기 중엽 로마교회는 이를 연장해 부활 전 40일부터
성 토요일까지 금식과 회개의 생활을 하도록
했던 것이 사순절의 유래다.
그러나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쁜 날이었기에
회개와 보속의 시기인 사순절 40일에서는 제외됐다.
즉, 부활 전 6주간(42일) 중
주일을 뺀 36일에 부활 전
제7주의 4일간(수요일까지)을 포함해 총 40일을 만들고,
그 첫째 날인 수요일에
재를 뿌리는 예식을 통해 사순절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신비인 파스카의 신비를
더욱 성대하게 기념하기 위해
성 목요일 주님 만찬부터 부활대축일까지를
‘파스카 삼일’로 지내면서 사순시기와 구별하고 있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자면,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전까지다.
이 기간은 글자 그대로 40일이라기보다는
부활을 준비하는 회개와 정화의 시기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교회는 왜
부활 준비 기간을 40일로 정했을까?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또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나기 위해 거치는
정화의 준비의 기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참회와 속죄로써 자신을 정화할 때
‘40’이라는 숫자가 종종 등장한다.
예를 들어,
노아 홍수로 새 세상을 준비할 때 40일간 비가 내렸고,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40년간 광야를 헤맸으며,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단식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전에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하신 것도 대표적인 예다.
●의미
초대 교회의 부활 축제에는
사순 시기가 들어 있지 않았고
오직 부활 대축일을 중심으로 한
파스카 삼일만이 기념되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로 부활의 참된 준비를 위한
회개와 보속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4세기 말부터는 3주간의 부활 준비 기간이
전례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단계의 변화와 발전을 거쳐
7세기에 와서 40일 동안의 재를 지키는 관습이 정착되기에 이른다.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그를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한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켰고,
엘리야도 호렙산에 갈 때
천사가 주는 음식만 먹으며 40일을 걸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전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인 부활을 제대로 맞이하고자
마음의 준비를 하는 기간을 40일로 정한 것은
나름대로 성서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순 시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이 규정하고 있듯이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제109항)하는 시기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그 어느 때보다 큰 열성으로 하느님 말씀에 기울이며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순시기에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수난을 자주 묵상하고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 회개와 보속,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도록 권고하면서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금식과 금육을 명한다.
그러나 사순시기의 보속과 희생은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외적이고 사회적”(전례헌장 제110항)이어야 한다.
진정한 회개와 보속의 삶은
개인적인 절제와 희생뿐 아니라
이를 통해 모아진 결실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외적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절은
고행 자체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집 안팎을 깨끗이 정리하듯
죽음과 부활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성화하는 시기가 사순절이다.
●전례
사순시기 전례는 재의 수요일
재를 이마에 받는 예식으로 시작한다.
(재의 수요일에 사용되는 재는 지난 해 성지 주일에 축성하여
한 해 동안 각 가정의 십자고상 위에 걸어 두었던
성지 가지를 미리 걷어서 태운 후 재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마르 1,15),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창세 3,19)는
사제의 권고를 들으며 이마에 재를 받는데,
이는 참회와 회개의 상징이다.
“그리하여 제 말씀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욥 42,6)는 말씀처럼
우리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와 보속의 마음 자세로
재를 얹고 사순 시기를 지내라는 초대의 말씀인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재의 의식
구약 성경에는 욥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시련을 받으면서
자신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잿더미에 앉았고(욥기 2,8)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의 태도도 그러하였다.(요나 3,6)
신약 성경에서도 같은 의미가 마태복음 11장21절에 나타난다.
이런 성경의 말씀과 같이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얹으며
인생의 무상함을 깨우치고
죄에 대한 보속을 준비하고
앞으로 다가올 부활을 준비하는
새로운 시작의 시간인 것이다.
●재의 의미
성령의 지시에 따라 예수께서 광야로 들어섰듯이
우리도 머리에 재를 얹고 사순 시기의 광야로 들어서게 된다.
이 사십일 동안 우리는 화려함과 풍족함을 피하고
광야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사람들이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신앙인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즉 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이마에 재를 받은 인간은
죽으면 모두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예식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기에 재의 수요일에 재를 받으며
우리는 인생이 무상함인 것을 인정하며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확고한 생사관을 확립하려는 결심이 필요한 것이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면서
우리의 죄를 참회하고 보속하는 시기이기에
미사 전례의 독서와 복음도 이런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또 그리스도의 수난에
적극 동참한다는 뜻에서
전례 중 기쁨을 상징하는 요소인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바치는 않는다.
사제의 제의도 회개와 속죄를 상징하는 보라색(자색)으로 바뀐다.
그러나 사순 제4주일에는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본다는
의미에서 장미색 제의를 입기도 한다.
교회는 또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의 신비를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칠 것을 권고하며,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시작하는
사순 마지막 주간을 성주간으로 정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는
가장 거룩하고 뜻깊은 기간으로 보내도록 초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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