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마르케티의 성 메르쿠리알리스(Mercurialis)
성 메르쿠리알리스는
이탈리아 중부 포를리의 초대 주교였다.
그는 이교신앙과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열성적인 반대자였다.
축일:5월23일
성 요한 밥티스트 로시 사제
St. John Baptist Rossi
San Giovanni Battista de Rossi Sacerdote
Born:1698 at Voltaggio, diocese of Genoa, Italy
Died:23 May 1764 at Trinita dei Pellegrini of multiple strokes;
relics translated to Saint John Baptist Rossi parish church in Rome in 1965
Beatified:13 May 1860 by Blessed Pope Pius IX
Canonized:8 December 1881 by Pope Leo XIII
제노아의 볼따찌오 태생인 그는 그 지방에서 존경받던 집안의 후손으로,
10세 때에 어느 귀족 집안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았다.
후원자 집에서 3년을 지낸 어느 날, 이 집에 까프친회의 두 수도자가 왔을 때,
그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그들이 그를 초청하였다.
카프친회의 수도자들에 의해 초청된 요한은 13세 때
로마의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학생 때부터 병원을 자주 방문하였으며,
40년 동안이나 인근의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보살펴주었으며,
고해신부로 유명하였기에 고백자들이 줄을 이었으나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이탈리아 제노바(Genova)의
볼타지오(Voltaggio) 태생인
성 요한 세례자 데 로시(Joannes Baptista de Rossi)는
그 지방에서 존경받던 집안의 후손으로 10세 때에
어느 귀족 집안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았다.
후원자 집에서 3년을 지낸 어느 날 그 집에 카푸친회의 두 수도자가 왔다.
그들은 그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그를 초청하였다.
그래서 그는 13세 때에 로마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1721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학생 때부터 병원을 자주 방문하였으며 40년 동안이나
인근의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보살폈다.
그러나 그의 음식은 보잘 것 없었고 의복도 남루하였다.
또 그는 고해신부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고백자들이 줄을 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66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가톨릭홈에서)
성사경신성성
성체신비 공경에 관한
예부성성 훈령
Eucharisticum Mysterium
35. 고백성사와 영성체
성체성사가 “우리를 일상 허물에서 건져주고
중한 죄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예방제(禮防劑)"와 같은 것으로
신자들에게 소개되고,
미사 중 통회의 부분을 적절히 이용하는 방법도 제시되어야 한다.
“영성체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살펴보아야 한다」(1고린 11,28)하신
훈계를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교회의 관습에 따라
자기가 대죄 중에 있음을 의식한다면 아무리 통회한다 하여도
미리 고백성사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감히 성체를 모시러 나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므로,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반성이 필요한 것이다”
“만일 다급한 경우에 고백신부를 만나지 못한다면 먼저 완전한 통회를 발하여야 한다”
신도들은 언제나 미사 집전 밖에서 고백성사 받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다.
특히 정한 시간을 이용하여 이 성사가 조용하게 이루어지고,
그들에게 참된 유익이 되며, 그들이 능동적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데에
방해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매일 또는 자주 영성체하는 이들에게는 각기 그 처지에 따라 적당한 때에
고백성사를 받도록 가르쳐야 하겠다.
(가톨릭홈에서)
자선
우리 천상적 친구인 성인들은
가끔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곤 한다.
성 요한 밥티스트 로시도 좋은 일을 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던
성인 중의 하나였다.
예를 들어 그가 한 성당에서 성무를 수행하게 되었을 때,
월급을 받자마자 그는 그 성당의 오르간을 사고 반주자에게 사례하는 데 써 버렸다.
또 자기에게 주어진 집을 자기가 속한 카푸친 수도회에 헌납하고
자기는 다락방으로 이사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미사 예물들을 집 없는 이들의 집을 구해 주는
집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열심에 가득 차
어떤 계획을 세울 때, 자기의 시간과 돈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과 똑같이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얼마만큼 희생할 것인가는 각자가 결정할 일이다.
누군가 내게 원하지 않는 일을 강제로 시키려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나의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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