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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글] 되돌아오는 악령 / 송영진(모세) SDB

Berardus 2019. 10. 11. 06:17


"되돌아오는 악령"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2019. 10. 11. 금
루카 11,15-26



    <되돌아오는 악령>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루카 11,24-26).”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이라는 말씀은, “악령이(마귀가) 사람에게서 쫓겨나면”이라는 뜻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신 일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 가운데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 일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해방과 구원에 직결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시는 일은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를 쫓아내심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실 때 ‘그 사람’에게서 쫓아내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도 쫓아내신 것 같습니다(루카 8,32). 그래서 쫓겨난 마귀는 인간 세상을 떠나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물 없는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나 사막을 뜻합니다.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라는 마귀의 말은, 마귀라는 것들은 쫓겨나더라도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려고 계속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실 때, 아마도 “지옥으로 가라.” 라고 명령하셨을 텐데, 그런데 지옥은 마귀들의 감옥이고, 마귀들도 두려워하는 곳, 또 마귀들도 가기 싫어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마귀들은 “사람에게서 나가라.” 라는 예수님의 명령에는 복종했더라도, 지옥으로 가라는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고 광야나 사막으로 달아났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라는 말씀은, ‘그 집이’ 비어 있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즉 마귀 들렸다가 치유된 그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고, 신앙생활도 하지 않고, 마귀의 공격에 대해서 무방비상태로 있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귀 들리는 일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당하는 일’이고, 그래서 그 일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덕분에 마귀를 쫓아내고 치유된 다음에 예수님을 자기 삶의 주님으로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로 해야 할 일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하지 않고 무방비상태로 지내는 것은 그 자신이 잘못하는 일입니다. 마귀에 대해서 무방비상태인 것은, 적극적으로 마귀를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자기 안으로 마귀가 들어오는 것에 저항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방치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귀가 되돌아온 것에 대한 책임은 그 사람 자신에게도 있습니다.)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라는 말씀은,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지는” 상황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무방비상태로 있다가 마귀에게 또다시 사로잡힌 사람의 경우에는 왜 처음보다 끝이 더 나빠지는 것일까? 이 말씀은 아마도 그런 법칙이 있다는 뜻은 아닐 것이고, 경험에서 나온 말씀일 것입니다. 무방비상태로 있으면 처음보다 끝이 더 나빠진다는 예수님 말씀은 신앙생활 전반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를 탈출한 뒤에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는 동안 하느님의 은총을 엄청나게 많이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 숭배에 빠지기도 하고, 반역죄를 짓기도 하는 등,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를 탈출한 첫 세대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칼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 사람들만 그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부모 세대와는 다르게 하느님께 충실했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 이스라엘은 곧바로 우상숭배에 빠졌고(판관 2,11), 부모 세대보다 더 나쁜 세대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자만심에 빠져서 무방비상태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앙인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깨끗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깨끗함’은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지속되지 않습니다. 세례성사는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를 받은 후에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듣는 일을 소홀히 하고, 믿음을 실천하지 않다가 세례 받기 전보다 더 나쁜 상태로 떨어지는 일이 실제로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세례 받기 전보다 더 신앙에서 멀어집니다. 그래서 비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활동보다 냉담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활동이 훨씬 더 어렵고 성과도 적습니다.) 나중에 냉담자가 되려고 세례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죽을 때까지 충실한 신앙인이 되겠다고 진심으로 다짐하면서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중간에 중단합니다. 마음이 세속으로 완전히 기울어져서 신앙 자체를 버리는 경우를 보면, 예수님을 모르고 살던 때보다 더 심하게 예수님에게 등을 돌리고 있고, 그래서 그 경우는 처음보다 끝이 더 나빠진 경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었더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보면 누구든지 용서받지만, ‘용서 받은 깨끗한 상태’는, 고해성사 한 번 보았다고 해서 그대로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날마다 끊임없이 깨끗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고해성사 본 뒤에 그것으로 만족하고서 방심하고 자만하다가 더 큰 죄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또는 성령께서 안 지켜 주셔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수호천사가 안 도와주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송영진(모세) S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