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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淸明)과 한식(寒食)의 유래◑

Berardus 2019. 4. 10. 21:51

    청명(淸明)과 한식(寒食)의 유래
    동안 구화(舊火)를 금하던 예속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도 하며, 청명(淸明)·한식(寒食) 때가 되면 바람이 심해서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청명(淸明)·한식(寒食) 때가 되면 바람이 심해서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한식(寒食)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청명(淸明)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이다.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전통 4대 명절에 해당한다. 계절적으로는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철이며 조상의 무덤을 보수하는 시기로 여겨진다. 한식은 원래 중국에서 들어온 절기였으나 한국에 토착화되었다. 지역적으로는 한반도 북쪽지역이 남쪽지역에 비해 한식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들은 한식을 냉절 또는 숙식이라고도 불렀다. 유래 한식(寒食)은 중국 옛 풍속에 "이날은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왔다"고 전해지는 〈개자추전설(介子推傳說)〉에서 유래했다. 중국 춘추시대에 공자 중이가 망명· 유랑하다가 진나라 문공이 되어 전날의 충신들을 포상했다. 이때 과거 문공이 굶주렸을 때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바쳤던 충신 개자추가 이 포상자들 중에 들지 못하자 개자추는 부끄럽게 여기고 산중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문공이 뒤에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찾았으나 산중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불을 놓으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불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서로 껴안고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었다. 이에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문공이 이날은 불을 쓰지 않도록 한 것에서 유래하여, 이날은 불을 지피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한식(寒食)'이라는 말은 '찬 음식'이라는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에서는 한식을 '냉절(冷節)', 또는 '숙식(熟食)'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풍습 중국에서는 한식이 큰 명절이어서 잔치를 벌이고 투계나 공치기, 그네뛰기 같이 옥외에서 하는 놀이를 즐겼다. 고려 시대에도 한식이 대표적인 명절 가운데 하나여서, 한식날이면 나라에서 종묘와 각 능원에 제향을 지내고 관공리들에게 공가를 주어 성묘하도록 했으며, 죄수에게 형을 집행하지 않도록 했다. 여기에서 유래해 이날 민간에서는 산소를 돌보고 추석이나 설과 같이 술, 과일, 포, 떡, 탕 등을 마련해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절사(節祀)라고 했다. 농가에서는 이날 논밭을 갈고 이른 농작물의 씨를 뿌리기도 한다. 조선시대 내병조에서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구멍을 뚫고 삼으로 꼰 줄을 꿰어 양쪽에서 톱질하듯이 잡아당겨 불을 만들어 임금께 올린다. 임금은 그 불을 홰에 붙여 관아와 대신들의 집에 나누어주었는데, 이는 불의 주력을 이용하기 위해 불을 소중히 여기는 숭배사상의 전승이기도 하다. 수령들은 이 불을 받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 때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사이에 불이 없는 날을 한식(寒食)이라 보기도 했다. 이 풍속은 흔히 청명의 풍속과 혼동된다. 한식(寒食)에 비가 오면 개자추의 혼을 기리는 것이라고 하여 기껍게 여기기도 했다. 이날을 전후해서 나무 심기가 좋은 날씨가 이어지기 때문에 산이나 묘소 근처에 나무를 심기도 한다. 한식(寒食) 날 진달래꽃을 거두어 술을 담그어 먹으면 기침에 효험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약밥이나 찬밥을 지어 먹었고, 쑥을 뜯어 쑥떡을 만들거나 쑥국을 끓여 먹었다. 이날 먹는 메일국수를 '한식면(寒食麵)'이라고 하여 별미로 여겼다.


    청명(淸明)은?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 양력 4월 5일이나 6일 무렵이다. 태양의 황경이 15°이며, 봄이 되어 삼라만상이 맑고 밝으며 화창해 나무를 심기에 적당한 시기이다.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논밭에 가래질을 하고, 못자리판을 만들기도 한다. 청명(淸明)은 6년에 한 번씩 한식(寒食)과 겹치거나 하루 전이 되기도 하여, 대개 한식(寒食) 풍습과 겹친다. 유래 청명(淸明)이라는 말은 봄이 짙어지며 하늘이 맑아지는 시절이라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의 전통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기원전 475~221)에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삶에 대해 언급된 이래, 당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945),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1281) 등 여러 문헌에 청명(淸明) 기간을 5일 단위로 3후로 구분하고 있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초후(初候)에는 오동나무에 꽃이 피고, 중후(中候)에는 들쥐가 사라지고 대신 종달새가 울며, 말후(末候)에는 하늘에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한다. 청명(淸明) 기간에 대한 이런 묘사가 조선 초 이순지(李純之)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1444) 등 한국의 여러 문헌에도 인용되고 있는데, 중국 문헌의 절기는 주(周)나라 때 화북(華北, 지금의 화베이 지방으로 베이징과 텐진이 있는 지역) 지방의 기후가 바탕이 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각 지역 기후와는 차이가 있다.


    풍속 조선 정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연중 행사와 풍속을 펴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에는, 청명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과 고을 수령에게 나누어주는데, 이를 임금이 내리는 불이라고 하여 ‘사화(賜火)’라고 부른다. 수령들은 이 불을 다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옛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불을 피우지 않는 풍습이 있다. 이는 한식 풍습과 연결되어 전하며, 때로 이 풍습을 한식의 풍습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청명(淸明) 때는 농사일을 준비하는 시기로,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한다. 춘분과는 달리 청명(淸明)에 날씨가 맑으면 농사나 어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바닷가 마을에서는 이날 날씨가 좋으면 어획량이 증가한다고 기뻐하며, 이날 바람이 불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중 '삼월령(음력이므로 대체로 양력 4월 무렵에 해당)'에 청명(淸明), 곡우 절기에 대한 당시 농촌 풍습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