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생명을 건져 내려는 인간의 타고난 연민을 과연 무엇이 막을 수 있을까요?
우물에 빠진 사람은 물론이고 물에 빠진 소라도 끌어내는 것은
계명을 거론하기 전에 사람이라면 당연히 저절로 하게 되는 행동이기에,
물에 빠진 생명을 살려 내야 하는지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한지 아닌지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사이들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들 스스로도 당연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그들은 안식일 계명을 내세우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려 합니다.
바리사이들이 그렇게까지 안식일 계명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 계명을 지킴으로써 어떤 가치를 수호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계명을 준수함으로써 돈독한 신앙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계명을 지키려고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것을 금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방식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도록 얻게 하려고”(요한 10,10) 오신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과 노력을 막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바리사이들의 이러한 모습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태도 때문일까요?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선택과 약속을 받은 백성이지만,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동족 이스라엘을 향해 바리사이 출신 바오로는,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하고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