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16-25
형제 여러분,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17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18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19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이미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21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22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23 그리고 불멸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인간과 날짐승과
네발짐승과 길짐승 같은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의 욕망으로 더럽혀지도록 내버려 두시어,
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몸을 수치스럽게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25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버리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로마서의 첫 부분은
로마서의 핵심을 요약하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교회 역사 안에서 열띤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그 첫째 주제는 ‘믿음을 통한 의화’입니다.
정의로우신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던 루터는
로마 1,17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다가 답을 발견합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은 인간을 단죄하시는 의로움이 아니라
인간을 의롭게 하시는 의로움,
인간을 구원하시는 의로움이라는 것입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이것이 로마서의 핵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구원을 위하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불의한 인간을 의롭게 하신다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그 실천의 관계에서 좀 더 생각할 부분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구원이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적 통찰입니다
. 내가 열심히 무엇을 행함으로써 하느님으로부
터 구원을 얻어 내겠다는 생각은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아니지요
. 개신교와 가톨릭의 차이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의 공통된 믿음을 확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둘째 주제는 피조물을 통한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우주의 질서와
그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계심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성경의 인격적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그분께로 인도할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워낙 비중이 있는 본문이라
짧게 요약하거나 묵상하기는 오히려 어렵습니다.
앞으로 로마서를 묵상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깊게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