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모든 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를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려고,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1,24─2,3
형제 여러분,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1 사실 여러분과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이들,
그리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유다교 묵시 문학에서
‘신비’는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갖고 계시지만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는 인간 역사의 계획을 가리킵니다.
한편 헬레니즘 시대에 널리 퍼져 있던 신비 종교에서는
‘신비’가 그 종교에 입문한 이들에게만 전해지는 은밀한 가르침을 지칭하는데,
그 가르침을 전수받은 이들은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신비’는 이 두 가지 전통의 영향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 그러나 그 신비는 감추어진 채로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납니다.
그래서 콜로새서는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라고 선언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에 이르는데,
그분께서 오심으로써 이제 그 신비가 우리에게 계시되었으며,
그분 안에서 우리는 완성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에 덧붙여 콜로새서는,
그 신비를 전하는 교회의 일꾼이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자신의 육신으로 채우고 있다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기 시작한
하느님의 계획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그 지체인 우리 신자들이 해야 할
수고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넓은 전망 안에서 살펴볼 때
, 아직 하느님의 계획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과 수고와 환난은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는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그 의미를 갖습니다.
인간에게 계시는 되었지만
인간이 아직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이 신비의 특성이라면,
그 수고의 의미는 종말에 가서야 비로소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보다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분명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율법주의,
근본주의를 경계해야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근거로 규정과 법규를 자기에게 편리하고
유리하게 마음대로 해석하려는 유혹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