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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8월23일) 복자 오피다의 베르나르도 / 성녀 엘리사벳 비쉬엘 데 아제스

Berardus 2015. 8. 25. 20:29

 

 

축일:8월26일(8월23일)

복자 오피다의 베르나르도

Beato Bernardo da Offida

BLESSED BERNARD OF OFFIDA

CAPUCHIN LAY BROTHER

Offida, 7 novembre 1604 - Offida, 22 agosto 1694

 

 

마르카의 아삐냐노에서

 어느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일곱살 때부터 양지기로 일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수도자가 되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카푸친회의 평수사가 되었다.

 

그는 여러 수도원의 잡일을 맡아 하면서 문전걸식을 시작하였다.

그의 이런 행동이 처음에는 인정되지 못하여 관구장에게 질책을 받기도 했으나,

일생동안 이런 일을 통하여 높은 성덕의 지위에 올랐던 것이다.

주민들이 개과천선하였던 것이다.

 

 

한번은 어느 가련한 부인이

 죽어가는 아이를 베르나도에게로 내보이며 살려살라고 애원하였다.

그는 그 아이를 팔에 안았는데, 그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 부인은 이제 아들을 살려내라고 생떼를 쓰기 시작하였다.

 

성인은 그 아이를 안고 그곳의 성 펠릭스 성당으로 가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

"선하신 성 펠릭스여, 이제는 당신이 저를 도와줄 시간입니다."

그후 그 아이는 소생하였다.

 

이 기적으로 주민들이 큰 혼잡을 빚었다고 한다.

그는 90세의 일기로 선종했는데, 수도원 문지기로 일생을 마감하였던 것이다.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San Felice da Cantalice  

St.Felix of Cantalice

Cantalice, Rieti, 1515 ? Roma, 18 maggio 1587

단순성과 기쁨.카푸친회.

축일:5월18일,게시판1166번,1770번

 

 

 

카푸친 작은 형제회(ofmcap)의 뿌리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를 가장 닮아 "제2의 그리스도" 라고 불리우는

아씨시의 작고 가난한 성 프란치스코에게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철저하게 따랐으며

그의 형제적 사랑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물에게까지 이르는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1209년에 성 프란치스코는"작은 형제회" 또는

"더욱 작은 형제들"이라 불리 우는 수도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는 이"작은 형제회"안의 개혁 운동으로 시작 되었는데

1528년 7월 3일 교황 클레멘스7세의 대칙서’Religionis Zelus’에 이어,

1619년 교황 바오로3세에 의해  "작은 형제회" 세 개의 가지-

OFM(작은형제회),OFMConv(꼰벤뚜알작은형제회),

OFMCap(카푸친작은형제회)-중의 하나로 인가되었습니다.

 

카푸친 형제들은

관상기도,고행,엄격한 가난,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에 헌신하였으며

복음에 대한 열렬한 설교자들이었습니다.

형제들은 단순한 전례 성서에 기반을 둔 설교,가난하고 소박한 생활 양식때문에

보통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카푸친이라는 이름도

긴 세모꼴 두건(capuce)이 달린 갈색 수도복을 입었던 형제들에게

대중들이 붙여준 카푸치니(capucini)라는 별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성 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게시판 676번.1403번

*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축일:9월17일,게시판 644번,1369번

* 작은 형제회 홈 www.ofm.or.kr

* 카푸친작은형제회 홈 www.capuchin.or.kr

 

*카푸친작은형제회 성인들 Capuchin Franciscans:

비테르보의 성 크리스피노(축일:5월21일(19일),게시판1773번.1891번)
단순성과 기쁨.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1587년.축일:5월18일.게시판1770번.1166번)
만디츠의 성 레오폴드 사제(축일:5월12일,게시판1759번,1890번)
라코니의 성 이냐시오 수도자(축일:5월11일.게시판1757번)
신앙을 수호하다 순교한 식마린겐의 성 피델리스 사제(축일:4월24일.게시판1727번,1119번)
빠르잠의 성 곤라도 수도자(축일:4월21일.게시판1722번)
성 요셉 레오네사(축일:2월4일.게시판1601번)
꼬를레오네의 성베르나르도 수도자(축일:1월12일(19일),게시판1564번)
아크리의 복자 안젤로(축일:10월30일.게시판1444번)
성 세라피노(축일:10월12일.게시판1417번,691번)
캄포로쏘의 성 프란치스코 마리아(축일:9월20일(25일)게시판1384번)
오상의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축일:9월23일.게시판1379번)
복자 오피다의 베르나르도(축일:8월26일(23일)게시판1334번)
복자 아가탄젤로와 카시아노 동료순교자(축일:8월7일.게시판1305번)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사제 학자(축일:7월21일.게시판1283번)

니코시아의 성펠릭스 수도자(축일:6월2일.게시판1794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시편8편

 

1 야훼,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주의 영광 기리는 노래 하늘 높이 퍼집니다.

2 어린이, 젖먹이들이 노래합니다.

이로써 원수들과 반역자들을 꺾으시고 당신께 맞서는 자들을 무색케 하셨습니다.

3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5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

7 크고 작은 온갖 가축과 들에서 뛰노는 짐승들하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물길 따라 두루 다니는 물고기들을 통틀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9 야훼,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축일: 8월 26일

성녀 엘리사벳 비쉬엘 데 아제스

Santa Giovanna Elisabetta Bichier des Ages

ST.JEANNE ELIZABETH des Bichier des Anges

St. Elisabeth Bichier des Ages

July 1773 at La Blanc, France - 26 August 1838

Canonized :1947 by Pope Pius XII

 

프랑스 러 블랑의 샤토 데 아제스에서

그 지방의 영주인 안토니 비쉬엘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죠안 엘리사벳 마리 루시로 세례를 받았으나, 항상 엘리사벳을 사용하였다.
그녀는 프와티어 근방의 수도원에서 교육받았으며,
그녀의 부친이 의회의 몰수령으로부터 가족의 재산을

 성공적으로 방비한 뒤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1796년,

그녀의 모친과 함께 프와티에 근교인 베티네스로 이사한 후부터
혁명 정부의 사제들과 무신론자들을 배격하면서 시골에서 홀로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1797년, 그녀는 성 안드레아 푸르네(축일:5월13일)를 만나 가까운 친구가 되었는데,
성 안드레아는 그녀가 교육에 종사하면서
병자와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베푸는 수도회 창설에 따른 규칙을 주었다.
1804년, 그녀의 모친이 운명하자,

그녀는 프와티에의 가르멜 수도원의 수련자가 되었으나,
섭리회로 가서 푸르네 원장이 계획하는 수녀들의 공동체 일원이 될 준비를 하였다.

이리하여 엘리사벳은 어린이를 가르치고 병자와 노인들을 돌보는

 공동체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이 단체는 1807년에 서원을 하였고,

 1816년에 프와티에의 주교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 수녀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1811년과 1830년 사이에 60개 이상의 수도원이 생겼다.

이 수녀회가 보통으로 성 안드레 사도 수녀회로 불렸으나

 공식적인 명칭은 십자가의 딸 수녀회이다.
엘리사벳은 점잖하고 온순한 여성으로, 많은 여행으로 경험을 얻었고,
또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극히 단순한 여성으로 비쳤다.

 

그녀가 1834년에 임종할 때,

 바스크 사제인 성 미카엘 가리코아츠(축일:5월14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성 미카엘이 베타람의 성심 사제회라 부르는 선교회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47년 교황 비오12세깨서 시성하였다.

 

 

 

 

 

축일: 5월 14일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

San Michele Garicoits

Bassi Pirenei, Francia,15 aprile 1797

- Betharram, Francia, 14 maggio 1863

 

성 미카엘은 피레네 산중의 작은 촌락에서 가난한 어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산중생활이 대부분인 그는 여늬 아이들과 다름없이 양을 치는 평범한 목동이었지만,

가끔씩 자기는 사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하곤 하였다.

 

그러나 부모들은

 "돈이 없다"는 식으로만 말했지만, 그의 할머니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쌩-팔레스본당 신부께 찾아가서 손자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그 본당신부의 주선으로 그 지방의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부모는 학비를 부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본당이나 주교관에서 일해야만 하였다.

 

이 학생은 시골 목동이지만 매우 현명하고 또 건강했다.

더우기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세로 노동과 공부를 했던 결과,

"우리의 알로이시오 곤자가"란 별명을 들을 정도가 되었다.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축일:6월21일,게시판1232번,1830번

Saint Aloysius Gonzaga (Jesuit):1568-1591년.예수회.가톨릭 청소년들의 수호성인)

 

이리하여 그는 1823년 12월에 사제로 서품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캄보의 보좌 신부로 출발한 그의 사제생활은 처음부터 얌센니즘과 싸워야 했으나,

예수성심께 대한 지극한 사랑과 자주 성체를 모시는 관습을 보급하여 극복하려고 애썼다.

그다음 부임지는 베타람 소신학교였다.

여기서 경험을 얻은 가리고이트 신부는 다른 2명의 사제와 함께 독단적인 봉사를 꿈꾸게 된 것이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제 양성 계획을 구체화 시킬 심산으로

3명의 동료와 함께 공동체생활을 시작하였다.

 

그후 그가 뚤루즈로 가서 예수회원인 러 블랑신부를 만났는데,

그 신부는 가리고이트 신부의 마음을 활짝 열게 했을 뿐만 아니라 격려까지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성 이냐시오의 자녀들과 같은 규칙에 근거하는 회헌을 만들고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것이 소위 "베타람의 성심 사제회"이다.

이 사제회는 그가 죽은지 14년 뒤에 성좌의 인가를 받았다.

 

 

 

 

 

축일 : 5월 13일

성 안드레아 푸르네 사제

Sant’ Andrea Uberto Fournet

St. Andrew Fournet

Maille, Francia, 6 dicembre 1752

-13 maggio 1834

 

 

프랑스의 프와티에 근교 태생으로 청년시절에

그는 종교에 염증을 느꼈고 일상 생활도 한 마디로 엉망이었는데,

교구 성직자였던 삼촌의 영향으로 사제가 되었으며, 자기 고향 마이예의 주임 사제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 때 그는 성직자 법의 맹서를 거부하였다.

그는 비밀로 사도직을 수행했으며, 1792년 성 금요일에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수례에 실려 감옥에 끌려가는 것에 대하여 항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신 바로 이 날,

그 분을 따르는 내가 수레를 타고 갈 수 없다"하여 그는 걸어서 갔다고 한다.

 

푸르네는 성녀 엘리사벳 비쉬엘과 교분이 많았는데,

1801년 이후부터 그는 그녀를 도와 십자가의 딸 수녀회 창립에 공을 세웠다.

그는 1820년에 자기 교규에서 은퇴하여 죽을 때까지

 이 수녀회를 지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