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입맞춤♡
옛날 옛적에 아무 나라,
아무 곳에 매우 흔한 그 일이 발생했다.
그 일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수백 번, 수천 번 일어났던 일이었고,
앞으로도 무수히 일어날 일이다.
보통 흔하고 평범한 일이지만,
그 일은 매번 하늘 나라의 천사들과
성인 성녀사이에 대단한 기쁨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무슨 일이냐 하면 산드라 공주라 불리는 예쁜 아가씨가 하느님과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우연히 발생했다고 생각하지는 말라.
절대로 우연이 아니니까!
사실 그녀가 잉태된 바로 그 순간부터 하느님은 남모르게
산드라 공주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해왔는데 드디어 그 일이 성사되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그 모든 노력이 성공을 거두어 산드라 공주가 마침내
하느님의 은밀한 사랑에 응답해 오자,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하느님은 이제 그분의 사랑을 공공연히 드러내시며,
그녀에게 정식으로 구혼을 받아 줄 것을 청하였다.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녀가 하느님과 사랑에 빠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하느님은 그녀의 마음에 이렇게 속삭이셨다.
"나는 앞으로 네게 여러 가지 멋진 선물을 할 것이다.
그 대신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다.
성 안에서 가장 어두운 땅 속 지하실에서 날 만나 주렴.
매일 매일 동이 트기 전에. 내가 은밀히 네게 사랑을 속삭일 때마다
아무도 몰래 건네 주었던 보물을 감추어둔 그곳에서 말이다."
깜짝 놀란 그녀가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동트기 전이라면 그곳 지하실은
너무 어두워서 하느님얼굴을 볼 수 없을 텐데요!"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네 말이 옳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있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단 말이냐?
지하실에 함께 있는 동안 난 너를 내 두팔로 꼭 안아줄 것이다.
그러면 어두움 같은 거야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너를 따뜻이 감싸 안아 줘도 소용이 없을 때면,
네 손에 아주 멋진 선물을 놓고 가겠다.
내가 너를 언제나 변함 없이 극진히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산드라 공주는 마침내 하느님과 약속을 했다.
"주님은 하라시는 대로 하겠어요.
좀 신비스럽게 들리지만 말이에요.
사실 주님은 늘 신비한 연인이셨죠.
어쨌든 주님이 주신 선물은 언제나 아주 근사했어요.
앞으로도 주님의 선물은 저를 분명 행복하게 해주리라 믿어요."
하느님은 이 말에 대해 명확한 대꾸가 없으셨다.
산드라 공주에게는 여성 특유의 직감이 있었기에,
하느님이 순간적으로 뭔가 말씀을 하시려다 말고 입을 다무시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다소 불안하여 하느님께 여쭙지 않을 수 없었다.
"주님의 선물은 틀림없이 절 행복하게 해주겠죠? 안 그런가요?"
하느님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말씀하셨다.
"어느 정도는 물론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진정한 기쁨은 줄 수 없을 게다."
"아니, 왜 그렇죠?"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주는 선물은 그 어떤 것도 진정한 기쁨이 되지 못한다.
오직 나의 입맞춤만이 네게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있지.
나의 두 팔로 감싸 안아 주는 것도 나의 입맞춤과는 너무나도 다르단다."
이제 산드라는 이 신비한 연인의 말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래요? 어떻게 다른가요?"
하느님은 또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대답하셨다.
"지금 당장은 말해 줘도 네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만 말해 두지. 나의 포옹이 너의 몸을 안아 주는 것이라면,
나의 입맞춤은 너의 마음을 안아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입맞춤은 바로 너의 영혼에 입맞추는 것이다."
산드라 공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곧 이어 심호흡을 한 다음 그녀가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다만 포옹해 주시는 것보다는 주님이 제게 입맞추어 주신다면
휠씬 더 기쁠것이라는 생각은 들어요.
주님께 제 영혼이 입맞춤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하느님은 미소지으셨다.
"지금 내가 말해 준다 해도
너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캄캄한 지하실에서 매일 나를 만나다 보면,
어느날 모든 것을 알게 되고,
그와 동시에 너의 영혼에 입맞추는 나를 체험하게 되리라.
그때 너는 비로소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 기쁨은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달라
아무도 네게서 그것을 빼앗아 가지 못하리라."
이리하여 산드라 공주는 하루도 빠짐없이
동트기 전에 성안 어두운 지하실로 하느님을 찾아가 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하느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지하실은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그녀는 갈 때마다 하느님이 늘 거기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하느님은 아무 말씀 없이
새벽이 올 때까지 강한 두 팔로 그녀를 꼭 안고만 계셨다.
그녀는 더없이 행복했다.
하느님은 선물도 잊지 않으셨기에 그녀가 빈손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언제부터였는지 그리고 왜 그런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지만 하느님은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신곤 하였다.
그럴 때면 그녀는
어두운 지하실 안을 손으로 더듬어 보기도 했는데,
단 1초도 하느님을 만져 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하느님이 거기 계시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적어도 그녀는 주님이 거기 계심을 믿었다.
왜냐하면 그분의 고요한 숨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느님이 그녀에게서 떨어져 있는 일은 드물었으므로
그분의 '부재'에 대해 그녀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와 하느님과의 갓 시작된 사랑법이었다.
그렇지만 상황은 곧 바뀌었다.
하느님의 '부재'기간이 점점 더 빈번해졌고 잦아졌다.
일 주일이 다 지나도록, 때로는 한 달이 넘도록 하느님이
단 한 번도 포옹을 해주시지 않자 그녀는 거의 절망 상태에 이르렀다.
나중에는 1년, 혹은 2년을 하느님의 포옹 없이 지내야 했고,
그렇게도 바라던 포옹을 하느님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해치웠기 때문에
도대체 정말 포옹을 했었는지조차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녀는 처음에는 슬픔의 골짜기로,
그 다음에 는 좌절의 늪으로, 이어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몇천번도 더 그녀는 더 이상 지하실에 가지 말아야지 하는 유혹을 받았다.
그런 식의 대우를 받으면서 뭐하러 간단 말인가?
때로는 마음 속의 번민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어서
음울한 지하실에 앉아 울부짖기도 했다.
"사랑하는 주님!
왜 이렇게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까?
왜 이리 저를 냉정하고 낯설게 대하십니까?
제가 뭘 어떻게 해야죠?
제가 뭘 잘못해서 화가 나신 겁니까?"
그런데 수개월을 그렇게 부재중이시다가
하느님은 돌연 나타나셔서
그녀를 이전보다 더 부드럽게 감싸 안아 주시며 토닥거려 주시곤 하였다.
"얘야, 나는 늘 너와 함께 있단다.
네가 날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하지만 저를 왜 이런 식으로 대하시는 거죠?
이전처럼 자주 안아 주시지도 않고요!"
그러면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너로 하여금 내가 주는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너의 영혼에 입맞추는 나를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신비로운 말씀만 계속하실 뿐
하느님은 더 이상 아무 설명도 해주시지 않았다.
그분이 강한 두 팔로 꼭 껴안아 주시는 바람에
너무나도 황홀한 나머지 그녀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여쭈어 볼 겨를이 없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기를 여러 해,
드디어 어느 날 그녀는 뭔가 더 알아내야만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여쭈어 보았다.
"주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을 맛볼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다니요?
언제 제 영혼에 입맞추어 주실 건가요?"
이때에도 하느님과 그녀는 서로 부둥켜 안고 있었다.
둘 사이의 사랑이 절정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 분명했다.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궁금해해도 당분간은 대답해 줄 수가 없구나.
지금 대답해주면 너는 네 앞에 펼쳐질 일이
두려운 나머지 내가 주는 진정한 기쁨을 거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해 줄 것이 있다.
오래도록 내가 너를 안아 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너의 마음 속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도록 하렴.
그러면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리라.
너의 영혼에 나의 입맞춤을 받고
내가 주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그 후 여러 달, 여러 해가 지났다.
사랑하는 님의 수수께끼 같은 제안대로
산드라 공주는 자신의 마음속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녀는 커다란 발견을 하게 되었다.
오래도록 하느님이 그녀를 포옹해 주시지 않게 되면,
그녀는 그렇게 소홀한 대우에 대해
마음 속으로 은근히 하느님을 원망하게 되고,
심한 경우엔 친구들이나 사소한 즐거움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위안을 찾곤 했다.
이는 분명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도 공주이긴 하지만
결국 하느님은 하느님 아니신가?
하느님은 만물위에 계시는 분이므로
그녀는 그분 앞에선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었다.
이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한동안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녀는 사랑하는 님에 대한 갈망을 흐려 놓은 일체의 모든 것,
모든 이에게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느꼈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 단 한가지는 하느님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히 그분의 것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게 된
산드라 공주는 몹시 두려워졌다.
하느님이 왜 다가올 일에 대한 말씀을
꺼려하셨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언제나 빈 몸, 빈 손으로, 어느것에도
아무에게도 애착을 주지 않고 태양 아래 어떤 것도
자기 것으로 하지 않는,
그렇게 힘겨운 무소유의 삶을 누가 살려고 한단 말인가?
이 세상 삶이 주는 즐거움이란 즐거움은 모두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라 해도
세상의 즐거움은 결코 하느님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니까
상상만해도 끔찍한 제안이 아닌가!
산드라 공주는 위대한 영혼을 타고나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여러분이나 나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영혼이었다.
그러니 이 세상 삶이 주는 작은 즐거움들을
그렇듯 단번에 포기할 수 없었음은 오히려 당연했다.
오래도록 그녀는 그녀의 사랑하는 님이
퍽 불합리한 것을 요구하신다
(그녀는 한때 그것이 하느님이 주신 영감이라고까지 생각했다.)는 핑계로
결단을 미루고 또 미루었다. 물론 그녀의 생각도 어떤 면에선 백 퍼센트 옳았다.
하지만 위대한 사랑은 반드시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법칙이 어디 있는가?
어쨌든 산드라 공주는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갖가지 작은 즐거움에 매달려 나머지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갈 수도 있었으리라.
물론 그렇게 되면 하느님의 포옹-아주 가끔씩-이야 받았겠지만,
그분의 입맞춤은 받지 못했으리라.
그런데 어느 날
몹시도 괴로운 마음의 투쟁을 끝내고,
마침내 그녀는 이 세상의 모든 만족감을 버렸다.
주저하고 궁리한 끝에 생각의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어쩐지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그 무엇도 아닌 하느님 한 분(그분의 현존이나 포옹,
그 밖에 그 무엇도 아닌 오직 사랑하는 님, 그분만이)뿐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그녀의 영혼에 입맞춤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바로 그날부터
그녀는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알았다.
물론 그녀라 해서 온갖 모양으로 닥쳐오는 슬픔이나 외로움,
고통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느님이 그녀의 영혼 깊은 곳까지 찾아오셔서 입맞추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수하고 영원한 진정한 기쁨의 원천이었다.
이제, 아무 나라의 산드라 공주는
성 안 어두운 지하실에서 뿐아니라,
아무 나라 아무 곳에서도 그녀의 사랑하는 님을 만날 수 있었다.
- 그리워라, 뜨거운 님의 입술.
그 입술로 나에게 입맞추어 주셨으면! / 아가1,2
-『기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